“아버지께서도 오래 전에 신천동 마을이장을 하셨습니다. 이제 마을에서 가장 젊은 제가 농사는 짓지 말라던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고 동부동 9통장이 되었습니다. 농촌도 살고 농업도 살리는 길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경산민주단체협의회가 주최하는 통일한마당과 대추축제&농산물한마당, 경산시민 영상기자단 교육 준비에 가뜩이나 짧은 가을을 바쁘게 보내고 있는 전국농민회총연맹 경산시농민회 최한철(54세, 사진) 사무국장을 이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최 국장은 지금은 동부동에 속했지만 예전에는 압량면 신천리에서 2남 3녀 쭝 3째로 태어났다. 남성초와 경산중고를 거쳐 영남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중1 때부터 팝송 듣기에 취미가 있어 자연스럽게 대학은 영문과를 선택했다. “영문과를 졸업했지만 사실은 강의실보다는 교지 편집실에서 대학생활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경산고 재학시절 교내 독서토론회 ‘경뫼’ 학술부장을 지낸 최 국장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사회성이 짙은 기사들을 써냈다. 대학 2학년 때 영남대 교지인 ‘영대문화’22집에 국민보도연맹 양민학살-문경석달마을사건을 인터뷰했고, 이듬해 23집 상권에는 ‘한국 속의 아메리카’를 주제로 대구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부대에 잠입취재했고, 하권에는 ‘북한 바로알기’ 기사를 연속으로 내보내 당시 교내는 물론 영남권 대학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23집 하권에 실었던 기사로 안기부에 연행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북한을 왕래하던 최모씨에게 청탁한 글이었는데 당시 교지 지도교수였던 이수인 교수가 어느 날 저를 부르시더니 연행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하숙하는 친구들 집에서 숨어지냈는데 한 달 뒤에 이수님 교수님으로부터 내사종결됐다는 말씀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습니다”
이런 활동으로 최 국장은 3학년 때 대구경북교지편집인연합회 4기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최 국장은 대학 재학 중에도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 늘 불려다녔다.
경산민주청년회와 경산지역사연구회가 중심이었다. 경민청과 지역사연구회는 96년에 결성되는 경산시민모임의 모태가 되었다. 특히 경산지역사연구회는 경산시민모임이 중심이었던 코발트광산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활동과 경산지역문화유적답사의 기틀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며 사진기자가 꿈이었던 최 국장은 교지 기자 시절 사진을 가르쳤던 선배가 운영하는 웨딩전문 사진관에 취업했다.
“교지 만들 때는 비밀유지를 위해 주로 암실에서 흑백사진을 뽑았는데 그 선배가 대구에 사진관을 개업했는데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죠. 언론사 사진기자를 목표로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어느 날 교내 방송국 선배인 엠비시 오모 기자가 ‘니 이런식으로는 언론사 기자되기 어렵다. 티오도 없거니와 전공자들도 날고 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안된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후 최 국장은 낙심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2-3년, 단과학원 부원장, 방카슈랑스, 다시 학원 운영 등을 거쳐 지난 18년 집으로 돌아왔다. 용성 자인농민회를 거쳐 지난해에는 시농민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2008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농사를 지으셨는데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습니다. ‘니는 마이 공부도 했고 그러이 농사는 짓지 마래이’라는 어머니 말씀을 거역하고 집으로 돌아와 남들이 짓던 포도 복숭아밭을 받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