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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에서 16년 산 파키스탄 사람 샤히드입니다”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4.10.02 15:00 수정 2024.10.02 15:01

한국 영주권 취득 유독 어려워…외국인 노동자 한목소리

↑↑ 파키스탄 사람 샤히드 무하마드 씨.

(재)한빛문화유산연구원·경산시가족센터·경산이주노동자센터·온나무·경산신문 공동기획 ⑪

<편집자주>
경산신문은 관내 생활하는 외국인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한 (재)한빛문화재연구원(원장 김기봉)과 5월부터 1년 간 외국인 생활상 조사 결과물을 지면에 싣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경산시가족센터(센터장 정유희)와 경산이주노동자센터(소장 안해영) 등 관련기관이 컨소시움을 구성해 참여한다. 결과물은 단행본으로 엮을 계획이며, 지자체의 외국인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길바란다.



샤히드 무하마드 씨가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 지 18년이 훌쩍 지났다. 2006년 스물다섯 살이던 샤히드 씨는 이제 마흔세 살의 가장이 됐다. 82년생. 그의 아내와 딸은 2022년에 한국에 들어왔다. 샤히드 씨가 들어올 때 받았던 D3비자가 그해 D7비자로 바뀌면서 가족을 데려올 수 있었다. 아내 나디아는 서른다섯, 딸 우스와는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파키스탄에는 2년마다 들어가는데 2016년 고향에서 결혼하고 이듬해 딸을 얻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아내는 남편이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혼자 딸을 키우며 가족이 함께 살날을 꿈꾸었다고 했다.

한국에 어떤 계기로 오시게 됐나요?
한국에 일하러 왔습니다. 한국에서 먼저 일하고 있던 친구가 소개해줬어요. 한국에 돈 벌러 오면 좋을 거라고. 그래서 파키스탄에 이런 일을 대행해주는 사무실에 가서 며칠 준비하고 인터뷰도 하고 D3비자를 받아서 그렇게 한국에 왔어요.

고향은 어떤 곳인지, 거기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고향은 파키스탄 펀자브고주 라호르에서 2시간 반쯤 걸립니다. 주민들이 많지 않은 한적한 시골이에요. 대학교는 가까운 시도에 있어요. 파키스탄하고 한국의 교육체계가 다른데 거기는 초중고교육, 고등교육, 대학교육으로 올라갑니다. 저는 매디컬 공부를 하고 허미오베틱, 한국말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물리치료도 하고, 한의학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파키스탄 전통의학이에요. 우리 타운에서 작은 클리닉을 몇 년 동안 운영했어요. 우리나라에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돈을 못 벌어요. 사람들이 클리닉에 오면 그냥 치료해주세요, 하는 경우가 많아서 정리하고 한국에 돈 벌러 왔죠.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보다도 소득이 낮았으니까..

한국에 와있는 다른 가족들이 있나요?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와 형제들은 고향에 있어요. 형제가 많은데 제가 9남매 여덟째, 남자 형제 중에 막내예요. 첫째 형은 택시 운전하고 둘째 형은 개인사업, 셋째 형은 농사지어요. 라마단 마지막 날 가족들이 다 모이면 30명 정도 됩니다.

↑↑ △ 샤히드 무하마드(41세), 부인 나디아 (35세), 딸 우스와 후세인(8세).


한국에 처음 오셔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처음에 간 곳은 부산에 오리고기 공장이었는데 갑자기 일이 많이 떨어져서 그만두고 수원 쪽으로 가게 됐어요. 수원에 CNC 선반 일했는데 기계 만질 때 물 안에 기름 때문에 알레르기가 생겼어요. 방진마스크를 써도 뜨거운 수증기가 눈 주위로 바로 뿜어져 나오거든요. 다들 많이 힘들어했는데 제가 가장 심했어요. 의사가 다른 일을 하라고 할 정도로. 11개월 만에 그만두고 2008년에 진량에 와서 이때까지 살고 있습니다.

경산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때 비자로는 바로 취업을 할 수가 없어서 노동부에 신청해놓고 기다리다가 지정해주는 곳으로 간 거죠. 문자 받고. 경산을 알지는 못했지만, 대구 성서공단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진량에 와서 자동차 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연마 일도 하고 지금은 와이어 컷팅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술이 없으니까 한국 사람이 많이 가르쳐줬어요. 한국OOO라고 금속처리업체인데 한일합작회사예요.

회사에서 일하시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월급은 좀 적지만 여기 오래 다니면서 비자를 계속 연장할 수 있었어요. 회사가 바뀌면 비자 연장이 어렵거든요. 그렇게 가족도 데리고 올 수 있었죠. 외국인 근로자가 저 말고도 두 명이 더 있는데 제가 제일 오래 있었으니까 사장님이 너가 대리 해라, 직급을 올려준 건 아니고 말로만. 처음에는 직원이 35명이었는데 지금은 한국 사람, 외국인 합해서 17명 있어요. 옛날에는 한 사람이 기계 하나를 봤는데 지금은 한 사람이 대여섯 대를 보거든요. CCTV를 달아서 누가 일하는지 안 하는지 알게 되니까 사람을 줄인 거예요. 남은 사람들 일은 더 힘들어졌죠.

생활하시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생활비가 좀 많이 들어요. 아프면 건강보험 있는데도 돈이 좀 들어요. 우리 와이프가 아파서 수술을 두 번 받았거든요. 이 집이 월세 30만 원인데 좁아서 좀 불편하죠. 고향에는 집이 크니까 우리 딸내미도 처음 여기 와서 작은 집 때문에 너무 답답해했어요. 빨리 돈 벌어서 큰 아파트로 가고 싶은데 월급이 적으니까. 그런데 가족들이 여기 있으면 돈 모으기 힘들어요. 한 달에 200만 원 넘게 생활비로 다 나가니까요. 와이프는 지금 비자로는 일을 못 하니까 맞벌이도 할 수 없고요. 전에 주 52시간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돈이 좀 됐는데 52시간이 되면서 월급이 줄었죠. 우리 회사는 주간만 하고 잔업이나 야근도 없어서 돈을 많이 못 벌어요.

힘들 때 도움이 되어주신 분이 있는지?
별로 없었어요. 이주노동자센터에서 비자 때문에 도와줬고 무료 진료가 있었어요. 자주 갈 때는 매주 가고 그랬는데 이제는 가족이 있으니까 한 달에 한두 번 가죠. 이번에 후원의 밤도 갔었어요.

↑↑ △ 경산신문을 살펴보는 나디아와 딸 우스와 후세인.


언어나 문화, 종교가 달라서 겪는 어려움이 있나요?
우리는 이슬람 종교인데 회사 바로 앞에 집에서 5분 거리에 기도하는 사원이 있어요. 이슬람 문화는 한국 문화와 많이 달라요. 우리는 여자가 히잡을 쓰거든요. 말 그대로 문화가 달라요. 집에 다른 남자가 오면 와이프는 히잡을 써야 하고, 이슬람 여자가 우리 집에 와도 제 앞에서 히잡을 벗으면 안 돼요. 스스로 지키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 닿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파키스탄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어서 계속 보고 있다고 생각하죠.

일을 쉬실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는지?
주말에는 가족들이랑 놀러 갑니다. 자인에 삼성현문화공원 가면 아기가 놀 데가 있어요. 대구이월드도 가고 스파밸리, 경주월드 같은 놀이공원을 아기가 많이 좋아해요. 딸이 진량초등학교 다니는데 한국말을 저보다 더 잘해요. 아기를 하나 더 낳고 싶은데 와이프가 난소에 혹이 있어서 나중에 시험관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인이나 부부 중에 한 사람이 한국인이면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는데 일반 외국인한테는 지원이 없어요. 다른 나라는 5년 있으면 영주권이 나오는데 한국은 16년 있었어도 안 돼요.

한국에서 일할 때 조심해야 할 게 있다면?
조심해서 일하고 다치면 안 돼요. 비자 있는 사람은 산재 처리를 할 수 있지만 비자가 없는 사람은 다치면 많이 힘들어요. 무조건 다치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해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개인적인 바람은요?
비자 문제가 좀 쉬워져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돈 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딸내미 학교 다니는 건 문제 없어요. 나라에서 다 지원해 주니까. 하지만 중고등학교까지만 지원이 되고 대학교는 안되니까 그때는 힘들겠죠. 제가 벌어서 고향에 가족도 도와줘야 하니까. 그리고 외국인에게도 시험관 시술 지원이 있으면 좋겠어요. 한국도 출산율이 많이 떨어지는데 한국 사람도 이런 지원을 받으니까 좋잖아요. 그래도 영주권을 못 얻으면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갈 수도 있어요. 그때는 아버지와 같이 농사짓겠죠.

경산시 외국인 정책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코로나가 심했을 때 나라에서 이민자 외국인한테 지원하는 게 있었는데 E7비자, E9비자 그 사람들한테는 지원을 안 해줬어요. 이민을 온 사람들한테는 코로나 지원이 됐었는데 비자를 갖고 일하러 온 사람들한테는 없었죠. 그리고 저는 차가 있지만 차가 없는 친구들은 이동하는 데 많이 불편해요. 택시 타고 버스 타는 데까지 갔다가 그렇게 해야 하니까 참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나라에서 하는 거지만 우리 와이프처럼 패밀리비자로 온 외국인도 일할 수 있게 해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경산을 떠나 대구나 다른 곳으로 이주할 계획은 없나요?
아직은 고민 안 해 봤어요. 경산은 자연도 많고 대구에도 가깝고 살기가 편합니다. 다만 중학교가 추첨이고 멀리 갈 수 있다고 들었어요. 한국 수능도 어려운 문제다고 생각하는데 고등학교도 많지 않아 진학도 엄마 정보력에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경산에 살 계획입니다.

↑↑ △ 인터뷰 중인 박선영 온마을TV 편집인과 샤히드.


<박선영 온마을TV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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