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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본에서 온 마츠다 타다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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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빛문화유산연구원·경산시가족센터·경산이주노동자센터·온나무·경산신문 공동기획 ⑩
<편집자주>
경산신문은 관내 생활하는 외국인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한 (재)한빛문화재연구원(원장 김기봉)과 5월부터 1년 간 외국인 생활상 조사 결과물을 지면에 싣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경산시가족센터(센터장 정유희)와 경산이주노동자센터(소장 안해영) 등 관련기관이 컨소시움을 구성해 참여한다. 결과물은 단행본으로 엮을 계획이며, 지자체의 외국인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한국 특히 경북과 인연이 많았던 마츠다는 교환학생 그리고 어학연수를 거쳐 대학원까지 대구와 경산에서 다녔다. 고향 시모노세키의 대학에서 남편을 만나 그의 고향 경산에서 초등학생 3학년 딸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한국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결혼 후 며느리의 입장에서 한국문화는 또 다르게 다가왔고, 이에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녀 역시 그랬지만 한국인 또한 누구보다 가까운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많은 것을 모르고 그 차이도 크다는 것을 실감한다. 경산시다문화가족센터에서 일본인 엄마들과 함께 경산과 대구에서 적응하고 생활하는 모임을 꾸려나가는 그녀는 일본도 한국도 품을 수 있는 폭 넓은 시각과 사고를 강조한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으며, 한국에 오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일본에서 2010년 한국에 왔습니다. 영남대학교 어학당에서 1년 동안 한국어 교육을 받았고, 이후에는 영남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문화인류학과 다녔습니다.
대학원을 문화인류학과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일본에서 대학교를 두 번 다녔습니다. 첫 번째 학교는 교토조형예술대학교에서 문화재 보존 과학을 공부했어요. 재미있기는 했는데 물건을 어떻게 보존하는지 기술을 많이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물건만 보이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일반 회사에 다녔습니다. 이후 취미생활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재미가 있어서 좀 더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들어 대학교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고향에 있는 한국어학과 대학이 있어서 그곳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대학은 시모노세키에 있는 대학 국제언어학과에서 한국어를 전공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이명옥 교수님을 통해 영남대학교를 소개받았고, 그리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영남대학교 어학원을 등록하고 이후 대학원까지 진학을 했는데 졸업은 어떻게 되었나요?
대학원 진학을 한 후 대구와 경북에 사는 일본인 엄마들에 대해서 석사 논문을 준비했어요. 그 사람들이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서. 당시 대구에 한일 가족 아이 모임이 있었어요. 여기서 결혼해서 생활하는 일본인 엄마들이 (일본인 아빠도 한국인 배우자 참여도 있었다) 모여서 아이한테 일본어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일본 연중행사를 체험하고 만들기도 하는 모임이 있어요. 그 모임에 대해서 연구하고 논문을 작성하고자 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이후 아이를 가지면서 입덧이 심해 논문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원을 다닌 후 결혼하신 것 같은데, 결혼은 언제 하셨나요?
제가 결혼을 좀 늦게 했습니다.(웃음) 38세인가 그때 결혼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48세입니다. 시모노세키 국제언어학과를 다닐 때 남편을 만났어요. 남편은 경산이 고향이었고, 그때 학교 유학생으로 왔습니다. 전 대구 사람들과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시모노세키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대구에서 온 사람들과 많이 만났어요. 학교를 다닐 때도 계명대학교에 교환 학생으로 6개월 다녔습니다. 그때도 대구가 살기가 참 좋고 사람들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도 경상도 사람인데 경상도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셨어요?
(남편이) 일단 말이 너무 적죠. (웃음) 사람들이 말투가 강해서 시장에 장 보러 갔을 때 처음엔 싸우는 줄 알았어요. 한국어 못하는 친구랑 택시를 탔을 때도 기사님이 뭔가 하시더라고요. 친구가 기사님이 화 내냐고 저에게 묻는데 잘 듣고 보니 사투리로 농담하신더라고요.(웃음) 그런 것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좀 무뚝뚝하기는 하지만 정이 깊은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국제결혼에 대해서 부모님은 어떤 생각이셨나요?
저희 부모님은 특별히 반대하거나 안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원래 외국인에게 편견도 없고 일본에서 한류가 엄청 유행한 시절이라, 한국드라마를 쉽게 볼 수 있는 환경이었고 엄마가 특히 한국 사극을 좋아하셨어요.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아무 말씀이 없었지만, 마지막 결혼식 때 일본에서 살 수 없겠느냐 말을 하시긴 하셨어요. 제가 첫째다 보니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저희 가족이 모두 사이가 좋아요. 그래서 좀 가까이에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유학생의 시각으로 봤던 한국과 결혼 후 며느리로서 본 한국은 좀 다를 것 같은데?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학생 때 봤던 세계와는 달라요. 유학생이 가는 곳과 결혼해서 가는 곳이 완전 다르잖아요. 세계가 너무 너무 달랐어요. 학생 때 한국 생활 적응과는 전혀 달라서 결혼 후 조금 힘들었어요.
경산에서 생활하며 어려웠던 점은 없나요?
여기가 아무래도 좀 외곽이니 사투리가 심해서 잘 못 알아들었어요.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못 알아듣는 것이 많았어요. 그리고 여기 어른들의 생각이 좀 다른 부분이 많아서 그것도 힘들었어요. 가끔 왜 저렇게 하는지 궁금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옆 나라 이웃 나라라서 약간 문화로 공유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그래서 서로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고요. 근데 다른 문화잖아요. 전혀 다른 문화로 생활하는 사람들인데, 비슷하다고 생각하니 다른 외국인들과는 다른 접근을 하는 것 같아요.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오히려 잘 이해하고 안다고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몰랐던 것도 많았고요, 실수도 많았어요. 힘들어서 한 동안은 스스로 한국사회와 벽을 세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러 곳에서 많은 한국 분들이 저를 받아들였고요. 저도 교류를 해 깊이 사귀면서 한국인 사고방식이나 습관을 배우고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노력중입니다. 지금은 벽이 없고요. 적극적으로 한국사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한국 분들이 다가와주고 저도 다가가고 서로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잘 알지만 또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합니다. 특히 학교 교육에 있어 독도 문제든지 또는 서로 사이가 안 좋을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혹시 이러한 문제의 어려운 점은 없나요?
딸이 유치원 때였어요. 그때 (아이가) 유치원 갔다 와서 엄청 울었던 적이 있었어요. 유치원에서 친구가 일본은 나쁜 나라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딸 입장에서는 엄청 좋아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있는 나라인데 나쁘다고 하니 슬퍼서 울었던 거예요. 한일관계에 있어서 역사문제는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딸 설명으로는 상황을 다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가지고 만약 교육적으로 그렇게 가르친다면 아직 역사도 지리도 잘 모르는 나이인데 이것은 아니다고 생각해서 유치원에 확인하려고 전화를 했었어요. 일제시대 때 일본과 현재 일본을 혼동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장님이 유치원에서 그런 교육은 절대 안한다고 하시고 친구가 어디서 들어서 하는 말이 아닐까라고 하셨어요. 저는 다음에 그 친구 엄마에게도 전화를 했어요. 친한 엄마입니다. 그 집에서도 그런 교육은 안한다고 하고 어떤 곳에서 형제가 들어 그걸 동생한테 말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엄마 생각도 듣고 제 생각도 나누면서 서로 간의 이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 엄마와 친분을 쌓고 한일문제 등 다양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에게는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조심스럽게 설명했습니다. 모든 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과 우리는 항상 다른 의견을 들었을 때 상대방이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고 모든 것을 다각적으로 보는 시각을 가지면 좋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왜 나쁜 나라라는 말을 듣게 되었는지 옛날에 일본이 한국에서 뭘 했는지 그때 어떤 시대였는지도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앞으로도 엄마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 수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딸은 다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엄마 말을 들어줬습니다. 딸은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태어났고 두 가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좋게 작용하면 좋겠지만 이때처럼 나중에도 힘들어할 때가 올 수도 있어요. 더 공격적이고 심한 말을 들 수도 있어요.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어요. 저는 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에 100% 이해해주고 도와 줄 수 없을 때도 있을 거예요. 그때 같은 정체성을 가지는 한일 가족 친구들과 같이 극복해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일 가족의 아이 모임에 나가는 겁니다. 그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면 그럴 때 서로 상담하고 공감하기 쉬울 거예요. 엄마가 도와주지 못하는 부분은 그 친구들과 함께 이겨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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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츠다 타다미씨가 이중언어 교사로 교단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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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대화는 어떻게 하시나요?
남편과 저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사용해요. 서로 상대방 언어를 알아듣기 때문에 서로 편한 말로 합니다. 남편은 한국어로 저는 일본어로 말해요. 우리 집 경우는 한일가족 중에서도 특이한 경우예요. 주변에는 영어권에서 만나는 부부가 많아 일어 잘하는 남편은 많지 않아요, 그래서 딸은 늘 동시에 두 가지의 언어를 듣고 저랑은 일본어로 이야기하고, 아빠랑은 한국어로 이야기해요. 다중 언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배우면 헷갈리지 않을까 고민을 했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다만 국제결혼가족이라고 해도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게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부모가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도 딸과 이야기하다가 한국어가 나올 때도 많고요. 아무래도 회화하는 상대방이 주로 엄마다보니 어휘가 편중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말은 되도 쓰기 읽기는 연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방학 때 일본에서 보내고 겨울에는 일본과 방학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일본 초등학교에 입학체험하고 일본어 능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중언어에 관한 강의를 들어봤는데 두 가지 언어가 되면 제3언어를 습득하기가 아무래도 쉽다고 합니다. 자기만의 노하우가 생긴다고 합니다. 지구촌 시대에 조금이라도 그게 힘이 되도록 노력중입니다. 옛날에는 이중언어를 키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정책적으로도 다문화가족 아이들에게 이중언어가 추진되고 한국사회에서도 많이 이해해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족센터 등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한국과 일본 교육 차이가 있나요?
좀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은 공부 위주잖아요. 일본은 그렇지 않아요. 물론 지역차이가 있지만 초등학생도 많이 놀 수 있어요.(웃음) 여기는 학교 수업이... 지금이 3학년이라 1시 반 되면 끝나잖아요. 그리고 애들이 학원을 다니잖아요. 밖에서 노는 아이는 거의 없고 학원에 가야 친구를 볼 수 있다고 하잖아요. 학원이 돌봄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매일 다닐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일본의 경우에는 3시나 4시 되어서 끝나요. 수업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학교에서 청소도 하고 급식도 하고 놀면서 3시나 4시까지 있는 거죠. 청소도 다 함께 하고 급식도 급식실에서 애들이 직접 가지고 와서 교실에서 애들이 친구들 급식을 배식해주고 같이 먹어요. 행사도 많고요. 공부 이외의 시간이 많은 거죠.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이 많고, 놀기도 많이 해요. 그렇게 학교에 오랫동안 있는 거죠.
경산의 일본인 엄마 모임 프로그램에 대해서 좀 더 소개해주세요.
대구 한일가족 아이 모임은 규모가 커서 유치부와 초등부 두 개로 구분되어 있어요.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해요. 정기 모임에서는 일본 연중행사에 관한 만들기나 체험을 실시합니다. 그림책도 읽어줍니다. 또한 초등부에서는 일본 국어 교과서를 쓰고 음독 연습도 하고요. 일본에서는 외국에 사는 일본 국적을 가지는 아이들을 위해서 교과서를 공짜로 보내줘요. 대사관에 신청하면 개인에 보내줘요. 초등학생이 되면 학업으로 바빠지기 때문에 집에서 따로 일본어 공부를 못하거나 해요. 그래서 그 공간에서는 친구끼리라도 일본어로 회화하고 다른 엄마들의 일본어 듣는 것도 연습이 됩니다. 봄에는 피크닉과 운동회, 가을에는 축제도 하고 겨울에는 그리스마스회도 해요. 경산 한일가족 아이 모임은 규모가 작아서 나누지 않고 다 함께 활동합니다. 엄마들의 정보교환도 필요하고 상담도 하며 친분도 많이 쌓아요. 현재 공식적으로 일본 엄마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은 한일 가족 아이 모임과 엄마합창단밖에 없어요. 특히 결혼을 계기로 한국에 살게 되고 한국어가 아직 서투르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전에 바로 아이를 가지게 된 작은 아이 엄마는 육아 때문에 계속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 이 모임이 선배 엄마들에서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방법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되고 큰 역할을 다합니다. 그리고 한국 정보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한 정보도 서로 공유합니다. 또한 한국 사람들 모르는 외국인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는데, 그런 정보도 이 모임에서 공유할 수 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센터에서 활동하는 덕분에 가족센터 선생님에게도 상담할 수 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 받아 참여할 수도 있고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경산을 떠나 대구나 다른 곳으로 이주할 계획은 없나요?
아직은 고민 안 해 봤어요. 경산은 자연도 많고 대구에도 가깝고 살기가 편합니다. 다만 중학교가 추첨이고 멀리 갈 수 있다고 들었어요. 한국 수능도 어려운 문제다고 생각하는데 고등학교도 많지 않아 진학도 엄마 정보력에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경산에 살 계획입니다.
<여수경 한빛문화유산연구원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