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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인문학 권영호

경산의 내방가사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2.12.15 15:18 수정 2022.12.15 15:18

지난 11월 26일 내방가사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에 선정됐다. 

 
↑↑ 권영호 한국인문학진흥원 부원장,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인문학박사.
세계기록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과 동궤의 문화유산으로 이해되곤 하지만 원래의 의미는 세상의 기억(Memory of the World)이다. 물론 이 기억은 기록물을 가리킨다. 인류의 기록유산이 된 내방가사는 중세~근세에 걸쳐 많은 여성들이 즐겨 짓던 가사이다. 

내방가사의 기록유산 등재는 우리 경북에서 의미를 둘 만한 일이다. 사대부가의 여성들이 창작하고 낭송하면서 즐긴 내방가사의 본고장이 경북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자전적 글쓰기로도 일컬어지는 내방가사는 유교문화가 가장 농밀했던 경북, 특히 경북 북부에서 꽃을 피웠다.

경북 중남부에 속하는 경산은 많은 수의 내방가사가 보고되어 있지 않다. 몇 가지 요인으로 미루어보아 경북에서는 내방가사가 적은 편에 속하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전통마을이나 종가의 분포로 볼 때 경산은 그 수가 적고, 상대적으로 도시화 또는 산업화의 속도가 빨랐다. 아무래도 내방가사는 유교적 전통이 많이 남아 있는 환경과 친연성이 있어, 대개 종가나 반촌, 집성촌을 중심으로 읽혀 왔다. 

경산의 경우 최근 조사된 자료를 보면 비불천위 종가를 포함해 10개 미만으로 종가의 수가 적고, 대도시에 인접한 탓에 도시화가 일찍이 진행되어 내방가사의 전승기반이 넉넉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조사된 예도 많지 않아 경산문화원에서 발간된 『경산문학』에 몇 편이 실려 있다.
 
내방가사는 특이하게도 중세에 성행했으면서 현재까지도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현재는 경북 북부지역과 70대 이상의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결코 보편적이라고는 볼 수 없으나, 고령의 여성층에서 공감의 폭은 좁지 않은 듯하다. 필자의 어머니도 최근에 지은 내방가사를 재미있게 읽으셨고, 안동에서 열리는 내방가사 경창대회에 멀리서도 참가하거나 관람하러 오는 예가 종종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70대 이상의 고령은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과 같은 고난의 시기를 겪고, 대가족제나 농촌공동체의 삶과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세태의 급변과 같은 사회변화를 경험한 세대로서 내면에 가득한 표출 욕구가 있었을 법하다. 제 어머니의 경우 내방가사를 짓고자 적극적인 의욕을 가진 적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꼭 내방가사일 필요는 없었을 터이니 알고 있고 쓰기 쉬운 글이 내방가사였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이렇게 보면 내방가사는 여성의 자전적 글쓰기라는 설명어가 이해된다. 모든 규범과 인식이 여성의 삶을 옥죄는 방향으로 변해버린 조선 후기의 여성들이 집안의 어른으로서, 며느리로서, 가장을 여읜 미망인으로서, 남겨진 자식의 성장과 집안 대소사 관리를 다 맡아 살아간 가장으로서 삶을 지탱했다. 

이러한 삶은 근세 이후에도 민족적 불행이 연속되는 가운데 평안하게 바뀌지 않았다. 큰 일이 나면 삶의 기반이 흔들리므로 서민들의 삶이 더 피폐해지는 것처럼 여성의 삶도 더욱 힘들어졌으니, 아마도 모성을 지녔기에 ‘감내’가 삶을 채웠으리라 여겨진다. 그 가운데 힘들게 돌본 가족의 성장과 성공이 주는 보람과 기쁨도 물론 간헐적으로 있었다. 흔히 말하는 애환의 삶이다. 이에서 생긴 정서는 자탄가, 송축가 등으로 지어지고 낭송됐다.

경산에서 즐겨졌던 내방가사에는 전승가사도 있고 근작가사도 있다. 전승가사는 이전부터 전형이 형성되어 크게 유행한 것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으로 화전가가 있다. 화전가는 잘 알다시피 화전놀이를 소재로 하는 작품으로서 일정한 패턴이 있다. 봄을 맞이한 희망보다 한탄으로 시작해 ‘계획 -> 화전놀이’의 내용이 나오는데, 놀이를 하면서 대화하는 장면도 꼭 끼어 있다. 때로는 대화가 길어지기도 하면서 신세한탄이나 논쟁이 나타나기도 한다. 

경산에서 나온 「吉日良辰花煎歌」도 화전가의 하나인데 ‘良辰’은 경사스러운 날이라는 뜻이다. 한편 근작가사는 해방 이후 지은 것으로서 일생을 돌아보는 소회가, 여행가, 세태가 등이 있다. 󰡔경산문학󰡕에 소개되어 있는 「권효의 노래」는 효윤리를 행하지 않는 세태를 논평하는 내용으로서 「계녀가」, 「도덕가」의 계통을 이어받고 있는 내방가사이다.

예전에 내방가사는 일정한 길이의 글귀(句)가 짝을 이루어 엮어진다고 해서 ‘귀글’이라고도 했다. 이 일정한 길이는 3·4조 4·4조가 한 번 반복되는 어구, 즉 네 마디가 짝이 되는 형식이니 창작하거나 낭송하기 쉬워 교육기회가 제한된 여성들이 즐기기 적합했다. 과거에 내방가사를 짓는 행위는 ‘글 하기’의 하나로 인식됐는데 일종의 교양으로서 세상과 소통하는 글을 쓰고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문화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여성들은 내방가사를 통해 한글과 도덕, 역사, 지리 등 교양을 익힌 측면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기능을 지녔던 내방가사가 경산에서만도 1980년대까지 창작되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내방가사를 짓고 낭송하는 것은 문화향유의 객체로서 소비의 위치에만 머물지 않고 삶의 고단함을 스스로 풀어내는 고차원적 문화행위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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