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고객은 평생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영업해 왔습니다. 처음 고객으로 만나면 절대로 그냥 안 보냅니다. 이번에 놓치면 다시는 내 사람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붙잡았습니다”
토목기사에서 횟집 사장 등 여러 자영업을 거쳐 가구유통에서 일가를 이룬 영남대박가구 박영환(59세, 사진) 대표를 이 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만났다.
박 대표는 옛 경산 따인 안심읍 매여동에서 5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반야원초와 안심중을 거쳐 대구공고 토목과에 입학, 졸업하기도 전에 전라도 정읍 복선철도공사장에 조기취업했다. 1년 후 토목기사가 돼 광명시에서 안양시간 2차선 도로 공사현장에서 3년간 측량작업에 몰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4년간 객지생활을 하다보니 고향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위로 누님만 둘이 있지만 맏이라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더라고예”
대구로 돌아와 작은 공업사에 부장으로 취업해 영업을 하다가 그만두고 횟집을 차려 활어차도 몰았다. 큰 교통사고로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다 날리고 재기차 시작한 횟집에서 다시 일어섰다. 빌라도 사도 돈도 벌었는데 이번에 영천에서 콜레라가 터졌다. 횟집 문을 닫아야 했다.
그리고는 조절모드로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45살에 가구점에 취업해 영업을 시작했다. 평소에도 영업체질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구 영업과 유통이 매력적이었다. 40대 중반, 가구에 올인했다. 10년 만에 압량읍 부적주공 뒤에 240평 규모의 땅을 사서 공장을 지었다. 1, 2층이 가구로 가득 찼다. 어림잡아도 시가로 15억 원이 넘는 물량이었다. 그러나 박 대표의 첫 가구점은 실패로 끝났다. 2019년 화마가 공장과 가구를 모두 삼켜버렸다.
“원래 가구점은 화재보험에 가입을 안 시켜줍니다. 억지로 보험에 가입했는데 보상금은 2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실의에 빠진 박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생을 마감한 진영 부엉이바위로 향했다. 그러나 여자는 강했다. 박 대표의 부인이 잡았다. “가구는 다 탔지만 사람은 남았잖아요”
다시 일어섰다. 불탄 공장부지를 팔아 지금의 내리 공장부지 400평을 샀다. 영남대 앞 원룸 등 전국의 3500여 개 원룸을 관리하는 박 대표는 상호도 ‘영남대박가구’로 짓고 재기를 시작했다.
박 대표는 영남대 앞 임당동 일대는 물론 멀리 광양, 거제, 순천, 성주, 포항, 구미 등 전국의 3500여 개 원룸을 관리하고 있다. 원룸입주자가 바뀌면 가구를 교체해 주는 일이다. 원룸가구는 일시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1번에 40~50만 원이 고작이지만 재미는 솔솔하다. 이밖에 사무용가구, 입주용 각, 돌침대, 붙박이장 등 나무로 만드는 것은 모두 주문 납품이 가능하다.
반야월에서 경산으로 이사 온 지 30년째, 40대 중반에 시작한 가구 영업도 자리를 잡았고, 그 사이 두 아들도 대기업과 교정공무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반야월에서 자율방범대와 방위협의회, 경산에 와서는 상가발전협의회와 안전모니터, 최근에는 자치와분권경산사람들 활동을 하고 있는 박 대표의 목표는 즐겁게 사는 것이다.
“일과 가정에 모두 웃음이 넘칩니다. 이제는 경산 지역사회를 웃게 만들고 싶습니다. ‘깊고 간절한 마음은 닿지 못하는 곳이 없다’는 오어사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일에도 사람에게도 진정성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