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기획특집 신문사자체

대륙을 품은 발해, 발해를 품은 경산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2.12.15 11:42 수정 2022.12.15 11:42





(재)한빛문화재연구원-경산신문 MOU               지역연구자료공유 기획연재 (25)


668년,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는 나당연합군과의 전쟁 끝에 멸망하며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다. 그리고 고구려의 유민들은 당나라로 끌려가거나 뿔뿔이 흩어지며 망국의 설움을 겪게 된다.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과 부친 걸걸중상도 그러한 유민 중의 한 무리였다. 당나라의 동북 변경지역인 현재의 요녕성 조양 일대에 이주한 고구려 유민들은 당의 기미지배 하에 놓여 있었으며, 이때 거란, 말갈인들과 혼재되어 있었다.

696년, 이진충을 중심으로 뭉친 거란족은 요녕성 조양에서 반란을 일으켜 영주성을 함락하게 된다. 이 혼란을 틈타 대조영과 그 무리는 고구려의 옛 땅인 동쪽으로 대거 이주를 시작한다. 그러나 당은 이를 지켜보지 않았다. 이진충의 난을 진압한 후, 그 군세를 몰아 동쪽으로 이주하던 대조영 집단을 추격하게 된다.
 
당군과 고구려 유민들의 쫓고 쫓기는 와중에 천문령(현재의 길림성 길림시 추정)에서 대대적인 전쟁이 벌어지고, 이에서 승리하며 당의 추격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후 대조영 집단은 동모산(현 길림성 돈화)에 정착하여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를 새로이 건국하였다. 698년, 발해는 그렇게 망국의 설움을 딛고 새로이 일어난 것이다.

발해는 한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개척하며 신라, 당나라, 일본, 중앙아시아와 활발한 교류를 통해 국가를 발전시켰다. 제2대 무왕은 당의 등주(현재의 산동반도)를 공격하기도 하였고, 제3대 문왕대에 체제가 정비되었으며 제10대 선왕대에는 당으로부터 해동성국(海東盛國)의 칭호를 얻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에게 발해는 교과서 속에서만 존재하는 나라로 기억되는 정도에서 그치는 듯하다. 신라나 백제와 달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존재하지 않았음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발해의 영역은 현재의 중국, 러시아, 북한에 걸쳐 있는 터라 더욱 생경하게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의 발해 연구자가 적을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북한이 각자의 관점에서 발해를 연구하는 터라 이에 대한 정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은 여러모로 우리가 발해를 생경하게 인식하는 결과를 빚어낸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에게 잊혀지는 듯하던 발해는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영순 태씨 34가구 80여 명이 살고 있는 발해마을이 그곳이다. 1592년 임진왜란 이후 태순금 일족은 현재의 발해마을에 이주해 오면서 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태순금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부친안 걸걸중상의 31세손이다.
 
성이 태씨인 연유는 태(太)는 대(大)와 통용되는 글자이므로 대(大)를 강조하기 위해 썼다고 한다. 일례로 『고려사』에 고려 후기 무신인 대집성(大集成)을 태집성(太集成)과 혼용한 기록도 존재한다.

발해마을은 입구의 표지석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태극기와 발해를 상징하는 깃발이 맞이해 주며, 마을의 담벼락에는 발해의 역사를 짐작케 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마을 안쪽에 위치한 상현사에는 2012년 10월 국가표준영정 제86호로 지정된 대조영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데, 경산 발해마을과 서울대학교 박물관 두곳에만 보관되어 있다. 

상현사에서는 춘분과 추분에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추모제를 지낸다고 한다. 상현사의 앞으로는 현재의 흑룡강성 영안시에 위치한 상경성의 발해 석등을 모방한 석등과 대조영의 흉상이 조성되어 있다. 발해 마을에 모여 사는 영순 태씨의 노력으로 발해는 경산의 작은 마을에서 기억되어 오는 것이다.

대륙을 호령하며 신라, 당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발해는 기억의 편린조차 모으기 어려울 만큼 우리에게 생경하고 낯선 역사 속의 한 국가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경산의 송백마을은 발해를 품고, 이를 기억하며 발해가 한국 역사 속 강인한 국가였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사실 ‘지역연구자료공유’라는 주제에서 발해에 대한 이야기와 발해마을에 대한 소개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연구자의 입장에서 국내의 발해사 전공자가 적고, 논의와 관심이 부족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발해의 역사를 기억하고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이번 글을 작성한 것이다.
 
마침 경산시의 관심으로 발해마을 현창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경산이 품고 있는 발해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정범 한빛문화재연구원


저작권자 경산i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