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동구 일대도 과거에는 압량주에 속한 지역에 해당되므로, 중고기-통일신라시대 경산을 언급할 때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신라와 백제의 군사적 대치가 장기화되는 와중에 선덕왕 11년(642)에서 태종무열왕 3년(656) 압량주의 군사적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다. 김유신이 압량주의 군주(軍主)로 임명되고, 이후 김인문이 압독주총관(押督州總管)으로 부임하며 장산성(獐山城)의 축성을 주도한 사례는 이를 일러준다.
장산성이 현재의 어느 산성과 정확히 대응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대체로 경산시 남천면의 금성산성, 대구 욱수동산성, 대구 고모동 인근으로 압축되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 경산 대평동 유적에서 조사된 적심건물지군과 도로, 이에서 출토된 막새 등의 존재는 어떠한 형태로든 중고기-통일신라시대 경산의 중심지가 이 일대에 존재했음을 일러준다. 따라서 추후 현재의 경산 대평동, 중산동 일대의 발굴조사 성과를 통해 중고기-통일신라시대 유적의 조사 성과가 증대된다면 조금 더 구체적인 압량주 중심권역의 역사, 고고학적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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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평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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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신라의 지방에 파견되어 지역을 통치하는 군주의 아래로 다수의 행정, 군사적 직무를 담당하는 관인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중고기 이후 신라는 영역을 확장하며 새로이 정복한 지역의 재지 유력 세력을 신라의 관료체제에 편입시킨다. 그러나 신라 왕경의 관료체계와 같은 것이 아니라, 신라의 중앙관등에 맞게 하향된 관위를 지급하는데 이를 외위(外位)라 한다.
외위제에 편입된 지방세력은 중앙에서 지방으로 파견된 도사(道使)의 명에 따라 그들이 속한 촌락의 일반민을 동원하였다. 이처럼 신라의 지방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상위의 지방관인 군주나 장군, 도사와 함께 외위를 사여 받은 지방 유력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자연스레 신라의 지방은 국가의 지배질서 속에 흡수된다.
이러한 관인들의 계서를 잘 드러내 주는 고고 자료는 중고기 이후 신라의 영역 각지에서 출토되는 허리띠 장식[帶裝飾具]을 통해 잘 파악할 수 있다. 이 시기의 허리띠 장식은 신라와 중의 북조(北朝)-수(隋),당(唐) 과의 교류를 통해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써, ‘소위 황룡사형 허리띠 장식’ 혹은 ‘당나라식 허리띠 장식’이라 불린다.
이 자료들은 신라 마립간기 경산 임당 일대에서 출토되는 허리띠와 같이 장식성이 화려하지 않고, 허리띠를 고정할 수 있는 교구, 방형 혹은 반원형의 외형에 직사각형의 구멍이 뚫린 과판과 띠끝장식으로 구성된 간단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아울러 소유자의 신분을 가시적으로 잘 드러내는 물질자료인 만큼 중고기-통일신라기 허리띠 장식은 지방관인이 매장되는 고분의 출토유물로 많이 드러난다. 허리띠 장식의 재질은 소유자의 계급에 따라 금, 은, 금동, 청동, 철 등으로 다양하게 제작된다. 이러한 양상은 압량주의 영역인 현재의 경산시 일대에서도 잘 드러난다.
현재까지 압량주의 권역 내에서는 경산 신제리, 부적동, 중산동, 갈지리와 대구광역시 욱수동, 시지동, 노변동, 삼덕동 등에서 출토된 바 있다. 재질은 청동과 철로 제작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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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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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핀 바처럼 신라 중앙에서 파견된 관인들은 금, 은 등으로 제작된 역심엽형 허리띠 장식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청동과 철로 제작된 당나라식 허리띠 장식은 대부분 지방의 관인들이 소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경산 일대에서 발견된 허리띠 장식은 압량주에 기반을 둔 중, 하위 지방관인들이 소유했던 기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압량주의 관할 내에서 발견되는 당나라식 허리띠 장식은 단순히 압량주 지방관인의 존재만을 일러주는 것은 아니다. 압량주의 중심인 장산군 일대는 신라 왕경에서 대가야의 고지(故地)인 고령, 합천 방면으로 향하는 육상교통로 상에 위치한다.
이 육로는 서쪽으로 대구현과 화원현을 경유하는데, 그 인근에 해당하는 현재의 대구광역시 상인동, 달성 본리리 고분에서도 당나라식 허리띠 장식이 출토되고 있다.
즉 신라 왕경에서 지방으로 향하는 교통로 상의 거점지역에 이를 사용하는 집단의 무덤이 조성되었으며, 그들은 신라의 지방을 구성하던 지방관인임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현재의 경산시내와 시지 일대에 집중적으로 출토된 허리띠 장식은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 신제리, 갈지리 등의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로 보건대 백제와 대치하던 장산군의 지방관인들이 현재의 경산시내와 시지 일대에 집중되어 매장되었다면, 삼국통일 이후 압량주의 지방 관인들은 왕경에서 지방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에 그들의 무덤을 조성하였고, 그 길목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잠들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