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있으면서 이러 저러한 주제로 여러 곳을 답사하기는 했지만,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답사를 이어온 경우는 없었다. 이번 전통마을 답사 기획은 새로운 시도로 기대가 된다.
다만 깊이 있는 비교를 위해서는 기존의 답사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애초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경산도시자생위의 활동 영역과 안목은 분명하게 넓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전통마을의 경관과 한옥의 미적 아름다움은 우리나라 전통 예술의 미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이 말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새로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았다”는 기사에서 나온 것이다.
궁궐의 건축도 그렇고 전통마을의 한옥도 모두 절제 속에서 미를 찾고자 하는 방향을 택한 것 같다. 이는 불교를 숭상한 고려사회는 물론이고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사회의 축적된 문화적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전통마을은 보통 산기슭 남쪽 경사면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배산임수의 지리적 형태를 취한다. 이러한 형태의 공간들은 주거지 구성 및 경작물 재배에 유리한 지형조건이 된다. 또한 유사시 신변을 보호할 수 있는 피난처의 역할도 한다. 마을 안에서 일어나는 건축행위의 기본 원리들은 마을사람들의 생활과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면서 삶과 융해돼 ‘생활의 장’으로서 마을 공간을 형성해 왔다.
전통마을의 경관과 공간구성 축은 다양한 중심들과 그들의 상호작용에 따라 형성되는 축을 기준으로 삼는다. 종교적 중심인 주산主山과 당목堂木은 마을 공간구성의 상징축으로 형성하고 있으며, 정신적 중심인 종가宗家는 종교적 중심인 주산 및 혈穴에 위치함으로써 당목과 함께 종교적, 정신적 상징축을 형성한다.
전통마을은 자연 질서에 자신을 조화시킴으로써 자연과 결합하고자 했던 풍수지리와 자연의 대상물을 신격화시킴으로써 절대적인 자연의 힘에 의존하고자 했던 샤머니즘적 민간신앙을 근간으로 형성됐다.
또한 농경문화의 영향으로 형성된 혈연공동체는 동성마을을 형성해 조선시대의 유교적 이념과 결합돼 사회의 기본 질서를 이루게 됐다. 이와 같이 한국인의 삶과 밀접하게 관계돼 왔던 풍수지리설, 무巫를 바탕으로 한 민간신앙, 유교적 이념 등은 전통마을의 공간 구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가을이 깊어갈 즈음 경산도시자생위원회 회원들과 함께 전통마을 첫 번째 답사지인 대구시 둔산동 옻골마을을 찾았다. 마을에 도착한 후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옻골마을을 둘러봤다. 짧은 시간 동안 살펴봤지만, 전통마을로서 옻골마을의 정체성과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상당히 짜임새 있고 보존상태 또한 좋다고 느꼈다.
옻골마을을 상징하는 종가인 백불고택百弗古宅의 인물로는 불천위인 대암공臺巖公 최종집과 백불암百弗巖최흥원이 있고, 이들의 별묘와 가묘 등이 모셔진 보본당報本堂이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자세한 조사를 못했지만 아마도 지금까지도 그 후손들이 종손과 종부의 역할을 다하며 이 집을 가꾸고 있음이 건물의 상태에 드러나고 있다.
보본당은 백불고택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축물로 마을 뒷산 생구암生龜岩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보본당은 건축미가 뛰어나다. 대들보는 나무가 생긴 모습 그대로 써 자연스런 굴곡미를 지니고 있다. 마을 동쪽 개울을 따라 내려오면 자손들의 강학 장소와 피서지이기도 했던 동계정이 있는데 현판 글씨는 허목이 쓴 전서체로 서체의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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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불의 17대손인 최병석(오른쪽)과 필자. |
옻골마을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위치한다. 경주최씨 대암공파臺巖公派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동성촌락으로 현재 20여 호의 고가들로 이뤄져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대구지역 의병장으로 활동한 최계 선생의 아들 대암 최동집이 광해군 8년, 1616년에 터를 잡은 이래 약 400여 년간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옻골은 마을 남쪽을 뺀 나머지 3면의 산과 들에 옻나무가 많아 칠계漆溪라고 했다.
마을 뒷산 정상에 기이한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 올라서면 대구 시가지와 팔공산 준령이 한눈에 내려 보인다. 이 바위는 거북같이 생겼다 하여 생구암이라 불린다.
풍수지리학상 거북은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마을 입구 서쪽에 연못을 조성했다. 동쪽은 양의 기운을 받기 위해 숲을 따로 만들지 않고 서쪽은 음의 기운을 막기 위해 연못 주위에 느티나무와 소나무로 비보림을 조성했다.
이 마을은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마을 형태를 지녔다. 마을 어귀에는 수령 350년이 넘는 거대한 회화나무 두 그루가 버티고 서 있다. 회화나무는 원래 3정승을 뜻하기 때문에 3그루를 심는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목적이었던 선비들의 ‘출세’의 가장 높은 자리가 정승 자리다. 그래서 회화나무는 선비마을에 많이 심었다.
옻골마을의 담장은 우리나라의 돌담이 자연스럽게 경사를 받아들이고 곡선을 따라 이어져 있는 모습과는 다른 직선을 고집하고 있다. 토석담으로 마을 안길의 돌담길이 대부분 직선으로 구성돼 있어 질서정연한 느낌이 드는 점이 특징이다.
전통가옥들과 일직선으로 각을 이룬 돌담길은 전형적인 반촌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마을의 건물 배치 방식은 유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건물 배치에도 봉건제적 위계가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물은 가장 뒤에 배치되는데, 마을 제일 안쪽에 종가가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종가 중에서도 조상의 공간인 사당이 가장 뒤쪽으로 들어가 앉았다.
옻골마을의 종가는 조선 영조 때의 학자 백불암 최흥원 선생의 호를 따 ‘백불고택’이라 불린다. 조선 인조 때 대암 최동집 선생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지은 유서 깊은 백불고택은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에서 2010년도 국가민속문화재로 승격 지정됐다. 이 고택은 대구 지역의 주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안채와 사랑채, 중사랑채, 보본당, 대묘, 별묘, 행랑채, 고방채 등이 각각 일곽의 담장 안에 균형감 있게 배치돼 있다.
옻골마을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전통마을의 전경과 특성을 살펴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번 첫 답사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있는 전통마을의 매력과 특색을 찾아보고 전통마을에 대한 안목을 넓혀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