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상 수상작]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을 읽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임선형(일반부)
스페인 가우디 성가족 성당 안에는 수난의 문 상단에 50개의 언어로 주기도문이 새겨져 있고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부분이 한글로 씌여져 있다.
먹을 것이 풍부하고 냉장고가 그득 채워진 대한민국의 일반 가정에서는 일용할 양식에 수없이 감사할 것 같지 않은데, 이 부분이 한글로 씌여진 것과 대한민국의 먹거리 현실을 직시하게 되니 하염없이 마음이 무겁고 눈물난다.
내 어린 시절 쌀은 두툼한 나무 뒤주에, 얼마 뒤엔 한번씩 누를 때마다 일 이인분 씩 쏟아지는 쌀통에 늘 채워져야 했을 것이다. 여덟 식구와 일하러 온 먼 친척들, 일꾼들이 북적거리는 가운데 밥상은 끊임없이 차려졌다. 어쩌다 김이나 생선구이는 엄청난 행복이었던 기억까지. 김장은 서너 개의 드럼통에 절여져서 동네 잔치 처럼 치루어졌다.
80년대에는 한창 농약이나 식품화학 첨가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질 때여서 아이들의 간식을 거의 집에서 만들어 주었다 고구마나 옥수수 삶은 것, 부침개,떡볶이 등등. 요리조리 멋지게 만든 음식은 아니었지만 두 아이는 큰 병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그러나 엄마 곁을 떠나 대도시에서의 삶은 스트레스와 더불어 아침굶기, 라면, 햇반 등으로 부실해지더니 아프기 시작했고 뜨문뜨문 병원으로 불려가곤 했다. "밥이 보약이라" 줄곧 중얼거리는 남편은 반찬 국물까지 다 호로록 다 마실 만큼 식성이 계속해서 좋았고, 늙어가는 나날에도 여전히 건강하다.
"밥은 먹고 다니냐?" " 어르신, 진지 드셨습니까?" 같은 말인데도 인사의 의미가 다르다. 앞말은 젊은 아이나 동료의 처량한 신세를 느끼며 함께 울적해지는 말투이고, 뒷말은 어른을 공경하는 따뜻한 인사이다.
밥은 관심이고 사랑이다. 그러나 일용할 양식 보다 더 많은 물질을 쟁취하려는 극한 경쟁이 치킨 피자 햄버거 커피 산업의 무한출혈을 야기하고 소비자의 밥상은 이미 "한국인의 밥상"이 아니다 빈부격차,소득 불균형, 팬데믹은 3000원 짜리 김밥도 부담스럽게 하고, 컵라면이 유품이 되어버린 청춘의 죽음은 절망스런 현실을 거듭 일깨워주기에, 가슴을 후비는 아픔 때문에 한 장씩 책 읽기가 버거웠다.
나 또한 이 엄혹한 2~3년의 시간 동안 고군분투한 30년째 자영업자이지만 극한 직업은 아니기에 밥상이 우울해질 리는 없다. 그러나 최근에 어떤 노인의 삶에 대해 알게 되고 그의 하루 한끼 식사가 생명 유지의 지난한 영양분인 걸 알고 몹시 서글퍼졌다.
이웃집에 찾아온 떠돌이 유기견을 산책시키기 위해 저녁시간에 동네를 돌아다니다보니, 개발이 주춤해진 오래된 주택가를 돌게 되고, 어수선하지만 길거리가 조용하여 걷기가 좋았다. 그러다 오르막 길 막장에 들어섰을 때, 길가 담벼락에 누런 개 한 마리와 쭈그려 앉아 뭔가 고치고 있는 한 노인, 그의 주변과 집 대문 옥상에 어마어마한 고물이 가득한 한 것을 보았다.
노인에게 어디 사는지, 왜 고물은 쌓아두는 지 물었다. 그는 그가 기댄 담 안의 집에 살았는데 지붕이 무너져 밖에 나와 산 지 3년이 되었으며, 고물은 고물상까지 들고 갈 여력이 없다고 하였다.
노인은 허리가 굽었고 몸체가 작았다. 군사독재 시절 군대에서 무자비한 매질과 성폭력으로 허리를 다쳤고, 학교도 직장도 구하지 못한 채 기초수급비로 늘 아픈 몸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밥은 하루 한끼로 채우고, 잠은 겨울에는 부서진 차안에서, 여름에는 공원 정자에서 잔다고 하였다.
그에게 한끼 식사는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이 될 수 있을까?
한밤중 다리를 다쳐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배달을 하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들어온 피투성이 젊은이의 비명소리는 나의 아픔보다 더 슬펐다. 너저분한 음식 쓰레기와 플라스틱 통만 가득 남겨지는 밥상의 시간.
작가는 농촌과 도시 빈민의 비극을 고발하고 통계와 사건 사고를 중심으로 차가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광우병,아프리카 돼지열병,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해 수많은 가축들이 산 채로 구덩이에 몰살되는 처참한 뉴스 화면이 떠오르며, 흰 비닐을 덮어쓴 괴기스런 인간들의 모습과 몸부림치는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에 절로 기도문이 읇어진다. "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반경100 미터 내 나의 주변엔 편의점 3개,미장원 5개,병원, 약국,카페, 분식집, 치킨피자점이 학교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다. 땅이 꿈틀댈 것 같지 않은 반촌에도 부동산중개소는 총총들어 10군데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축소판이 아닐까? 열심히 돌아가는 점포는 병원과 약국 뿐이다. 학원과 목욕탕은 문을 닫았고 버티고 있는 가게도 하나씩 사라질 위기이다. 이제 동네 자영업자들은 돈을 벌자는 목적보다 그냥 연명 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이다.
총을 먼저 가지게 된 자들은 아직도 활을 가지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이들을 정복하여 노예로 부린다. 이미 자본가의 손에 생존을 맡겨버린 영세 소상공인,하청업체 아래 하청업자의 기술자는 그들과 "생명의 무게"가 다르다.
"위험을 방치한 자들의 처벌과 재발방지를 구의역에 와서, 또 2년 뒤 태안 화력 발전소 김용균의 주검 앞에 서서 약속한 정치인의 금배지는 여전히 반짝거려도 생명의 빛을 잃은 노동자들은 더 많아졌다"
그러면 희망은 있는가? 눌린 자들이 여유롭고 따뜻한 밥을 먹을 만큼, 어제보다 더 나은 대한민국에서 내 아이들은 살아갈 것이라는 평화로운 꿈을 믿을 만큼. 그래서 단식이다,삭발이다,오체투지 삼보일배, 눈물과 아우성으로 법이 바꾸어지기를, 세워지기를, 지켜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이들을 위해 또 간절히 기도한다.
이제, 밥을 먹기까지 수고하는 이들의 피땀을 생각하니 "물 만 밥에도 목이 멘다"
[금상 수상 소감문]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엊그제 또! 또! 23세의 젊은이가 죽임을 당했다. 이번에는 빵공장 사고이다. 근데 이놈의 회사는 사람이 비참하게 죽어나갔는데도 피 묻은 자리 옆에서 빵을 계속 만들라고 했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십자가 죽음의 행진인가? 어린 양을 희생시켜서 그 피와 땀값으로 커피와 빵과 치킨을 먹고 마시는구나! 또 눈물난다.
노트북을 사야겠는데 이리저리 재보는 사이,이빨이 흔들거리고 아파서 치과에 갔더니 두 개를 빼야 한다고 했다.
두 개나? 돈이 쓰러지는 소리, 으윽. 하나만 빼면 안될까요? 말하기도 전, 순식간에 이빨 두 개가 땡그라니, 피묻은 거즈와 함께 철통에 떨어졌다. 임플란트 비용 260만 원. 죽을 일도 아닌데 눈물이 난다. 이빨 빈 자리 땜에 씹을 때마다 자꾸 혀를 깨문다.
삶이 고단하다. 돈도 쪼달리고 들리고 보이는 소식에 숨통이 조이는 기분이다. 쉽게 자주 슬퍼하는 나 같은 사람은, 어릴 때 천방지축 마구 명랑하고 소녀일 때 가늠할 수없는 미래를 꿈꾸느라 다소 거칠지만, 20대 이후로는 세상이 아픈 만큼 대한민국이 아픈 만큼 이웃이 아픈 만큼 함께 아파한다.
내가 매일 지나다니던 광주도청를 바라보며 슬픔어린 20대가 지나고, 그보다 더 긴 세월 동안 내 핏줄의 아픔이 더해지며 울음소리는 더 깊어졌다.
내 자신의 고통에 헤매일 즈음에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는 끊임 없었으며, 정은정 작가의 울분에 찬 글을 읽을 땐 머릿속에 가시가 박히는 듯 했고 이빨 하나도 해 넣을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을 생각했다.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하자 하염없이 한가해져서, 배고프고 아픈 고양이가, 매 맞고 버려진 개가, 플라스틱 쓰레기가 보이고, 곤궁한 사람들 학대 받는 아이들도 보였다.
철학과 역사학 강의에도 귀가 기울이며 머뭇거리다가 어느 순간 오래된 원고지를 꺼내 펼쳤고 새 연필을 깍아 드디어 쓰기 시작했다. 이제 기쁜 소식에 덧붙여 수상소감까지,
<저의 존재와 가까운 주변의 존재도 건강한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마당에는 강아지풀 소리쟁이 쑥 민들레 질경이 까마중... 이름을 가진 잡초가 무한대로 자랍니다.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가지 풀로서 원하지 않는 곳에 자라나서 경제적 가치가 없는 식물" 이것이 잡초의 정의라 할지라도 땅을 기름지게 하며 짐승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니 저는 이름을 가진 잡초입니다. 사는 동안 천개의 바람이 스쳐가고 백 개의 달빛을 받았습니다. 저는 끝없이 슬퍼하지만 수없이 많은 복도 받았습니다.
책을 쓰신 분과 저를 뽑아 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쓰기를 끝내고 ‘루루~~’ 행복한 마음으로 식탁 위에 어지러운 메모지를 정리하려는데, 남편이 앞에 앉더니 신기한 듯 입을 벌렸다.
“아~~ 선형아, 나도 이빨 두 개 흔들려서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