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작]
경산시민이 되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을 읽고
김봉성(일반부)
내 서울 혐오는 20년이 훨씬 넘었다. 서울이 먼저 나를 부정했으니 정당방위였다. 부산에 살 당시 아침마다 지하철 2호선 공사 때문에 등굣길 정체를 걱정할 때, TV 아침 정보 프로그램에서는 서울의 교통 상황을 생중계했다. 제대 후 복학하고 보니 ‘인서울’은 공간적 분리가 아니라 위계적 분리가 되어 있었다. 서울이 벼슬이었다.
대한민국은 체지방 90% 안팎의 비만이다. 서울이 아닌 모든 땅이 지방으로 단순화 된 사실상 서울민국이다. 서울민국에서 살아남은 지역은 감귤섬, 여수 밤바다, 해운대, 성심당, 우리 땅 정도다. 2018년 여름, 경산 하양이 최고 기온을 갱신했을 때는 ‘세상의 이런 일이’쯤으로 깔짝대더니 서울이 최고 기온을 갱신하자 ‘기후 위기’로 긴급해졌다. 태풍이 한반도를 비켜난다는 뉴스도 정확히 말하면 서울을 비켜나는 것이었다. 모든 공간을 여의도 면적의 몇 배로 설명하는 서울중심주의의 태도에 질렸다.
문제는, 그 밉살맞은 무례를 사실은 나도 오랫동안 유지해온 것이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와 이주결혼여성뿐만 아니라 미등록 이주아동 관련 서적을 찾아 읽을 정도로 소수자에 관심을 가졌지만, 농촌은 안중에 없었다. 더군다나 경산에 산 지 14년차로 접어들었는데도 말이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을 읽고 나서야 경산이 대추 주산지고, 그 대추는 임산물로 분류되는 것을 알았다.
나는 경산시민이라는 자각이 거의 없었다. 내 방은 주소지 경산보다는 대구까지 지하철 20분 안팎 거리에 있다는 사실로 인지되었다. 주민세 납부할 때와 국회의원 선거할 때 문득 닥쳐오는 ‘경산시민’은 매 번 새삼스러웠다. 스마트폰 톡톡 두드리면 다음날 생필품이 문 앞에 나타나는 시대, 내가 어디에 있건 상관없었다. 하물며 임당동 인근에는 대학교를 낀 유흥 시설과 식당, 어지간한 병원, 극장, 홈플러스, 잘 가꿔진 남매지까지 갖춰져 있어서 내게 경산은 농촌조차 아니었다.
정작 내가 경산에 머무는 이유는 경산이 농촌이기 때문이었다. 초여름에 창을 열면 먼 논에서 잔잔하게 밀려오는 개구리 소리가 청명했고, 수시로 화음을 맞추는 닭, 소 울음소리가 정겨웠다. 금호강 자전거 도로를 따라 옆으로 오종종 채워진 논밭이 한갓졌다. 분명 농촌을 듣고 보면서도 내게 농촌은 전원일기의 풍경일 뿐이었던 것이다. 내 도시중심적 정의가 여의도 면적 약 142배만큼 부끄러웠다.
이 책을 통해 실감한 농촌은 처참했다. 뉴스로 알고 있던 지방 소멸은 서울 사람에게 경산 하양이 낮 최고 기온 40.5도를 기록하는 것 같은 막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소멸 속에서 살고 있는 삶을 목격하는 일은 달랐다. 소멸은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목욕탕과 우체국이 없어지고, 버스 배차 간격이 늘어나고, 주기적으로 내가 키운 동식물을 합법적으로 몰살시켜야 하고, 이웃이 사라져 가고, 일 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 부당함이 힘에 부치는 나이를 견디며, 말라가고 부스러지는 실시간의 고단함이었다.
무관심이 더 아팠을 것이다. 도시는 농민들의 한탄을 ‘농촌은 본래 그런 것’쯤으로 흘려들었다. 최근에는 인권운동가와 문필가들까지 여성주의에 매몰되었고, 대중도 LGBT는 고려할지언정 농촌을 생각하지 않았다. 도시에게 농촌은 삼시세끼 체험하는 6시 내 고향일 뿐, 누군가 살고 있는 삶터가 아니었다. 나는 산천어 축제에 생명 존중 사상을 들이대며 내 도덕적 우월감을 음미할 뿐, 화천 농민들의 삶을 보지 못했다. 농민들은 아무리 외쳐도 세상이 들어주지 않을 때, ‘늙으면 죽어야지’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대한민국이 차가웠을 것이다.
88만원 세대로서 나도,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 지금의 청년 정책들은 우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을 뿐, 우리는 출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속수무책의 중년으로 폐기되었다. 아동, 청소년, 청년, 노인, 여성, 장애인 정책은 있지만, 제대로 된 청년을 살아보지 못한 중년 남성을 위한 정책은 없었다. 17만 원짜리 월세 방, 40대 미혼 남성. 나를 설명하는 사실들이 내 고독사를 예고하듯, 대한민국에서 농촌은 고독사 중이다. 아니, 당한다.
당장 내 방과 인접한 마을이 소멸 중이었다. 북부동은 대단위 원룸단지와 기존의 농가가 인접해 있었다. 내 일상 동선과 겹치지 않았지만, 투표하러 갈 때나 자전거를 타고 홈플러스나 극장에 갈 때면 농가를 지나치곤 했다. 한 해씩은 몰라도, 내가 이 동네에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해 보면 빈 집이 늘었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개구리 소리도 그쳤다. 논과 과수원이 경산대임 공공주택지구로 선정되면서 사라졌다. 보상금의 산수에서 토지가 수치화 되며 ‘농민의 삶’은 방구석 내 인생처럼 헐값에 처분되었을 것이다.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아서 이제는 내 밥상에서 경산시 지도를 본다. 경산은 울 면적 2/3 정도 되는 꽤 큰 도시다. 그 넓은 땅 중 경산시청과 지하철역을 중심으로만 건물명들이 북적된다. 27만 8천여 명의 인구 중 절대다수는 대한민국 서울처럼 한 곳에 몰려 사는 것이다. 여기에 약 2만 3천여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대임지구까지 생겨나면, 경산시는 인구 감소 시대를 역행하는 인구 30만을 자축할 것이다. 그때, 지도상의 여백들이 더 쓸쓸해졌을 것이다. 무관심 속에서 얌전히 사그라드는 생(生)들을 꼭꼭 씹어 먹는다. 유튜브를 마주한 김치, 콩자반, 햄 몇 조각의 내 밥상이 농가의 체념과 악수한다.
난립한 정치적 올바름은 ‘촌스럽다’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올 가을에는 자전거 방향을 돌리려고 한다. 기존의 내 자전거는 내 방과 하양교까지, 조금 과해지면 영천교까지의 속도일 뿐이었다. 그러나 올 가을에는 경산의 논밭, 과수원 사이를 천천히 돌아다닐 것이다. 부산에서 경산으로 진입했을 때 도로 양 옆으로 펼쳐진 참외 파는 곳의 정체, 경산이 대추 주산지라는 사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농촌의 ‘촌스러움’을 확인할 것이다.
그래봤자 농촌은 여전히 구경거리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가 풍요로워질수록 사용가치가 최저시급에 수렴해 가는 역설을 직시하는 것이 농촌과 가까워지는 첫 걸음일 듯하다. 촌스러움이란, 허름한 교환가치가 아니라 사람 몸에 가장 가까운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일이다. 그 가치를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발로 밟을 때, 비로소 경산시민이 될 수 있을 성싶다. 무엇보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땀 흘리는’ 농촌을 보며, 빼앗긴 내 청년에 봄을 돌려 줄 수 없어도 내 중년마저 빼앗기지 않을 끈질긴 생명력을 배울 것이다. 채워질 내 생명력은 경산의 여백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본다.
[대상 수상 소감문]
나이를 먹다 보면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진다고 하던데, 과연! 제게서 꼰대를 발견하곤 합니다.
이대남, 이대녀에게 ‘요즘 애들은 쯧쯧’과 결이 같은 삐딱한 시선을 쏘면서 스스로 ‘요즘’에서 물러나 ‘나는 옳다. 왜냐면 내가 해 봐서 안다’로 침잠합니다. 타인의 생각에 흔들리지 않는 왜곡된 불혹은 나이 중독의 대표 증상일 것입니다.
독서는 나이 중독을 방지하는 최강 백신인 듯합니다. 간접 경험을 통해 최소한 ‘내가 해 봐서 안다’의 범위라도 넓혀 줍니다. ‘내가 옳다’를 물리지 못해도 내가 해 본 범위가 넓어지고 그것을 제대로 아는 한, 꼰대가 돌출될 가능성은 낮출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영상의 시대, 영화조차도 ‘짤’로 압축되는 시대, 텍스트 덩어리는 비효율적 매체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언어로 사고하는 한, 사고의 깊이는 텍스트를 좇아올 수 없습니다. 제가 해 봐서 압니다. 독서에서만큼은 꼰대를 물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것으로 밥 벌어 먹고 삽니다. 선생질이 오래되다 보니, 교실 안에서나 통용되는 보잘 것 없는 권위 뒤에 숨어 학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제한 없는 권력이 부패하듯 제한 없는 생각이 편협해지는 것은 아닌가 내심 찜찜했지만 대충 눙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덕분에 털어냈습니다.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이 나쁘지 않게 읽고 쓰는 것임을 확인 받았습니다. 학생들에게 꼰대가 아닌 선생으로서 잔소리할 수 있는 이 근거, 감사합니다.
칭찬 한 번 받았다고 좀 우쭐거려 봅니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에 부연을 달고 싶습니다. 실내에서 책을 읽기에는 하늘의 청명함이 아깝습니다. 바삭바삭한 볕과 하늘하늘한 바람으로 쏟아지는 하늘 아래에서는 활자도 아삭아삭해집니다. 가을은 온 세상이 독서 맛집입니다.
책 한 권 들고 밖으로 나가시길 권합니다. 책 읽기 좋은 날씨가 신세계처럼 우리를 살려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