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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진흥재단 3차 기획취재] 제노사이드 이후 반성과 용서, 화해의 길 5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2.10.06 16:25 수정 2022.10.06 16:25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청산②…‘기억의 역사화’ 중심 <기억의 공간>&<메모리얼파크>
옛 해군기술학교에 국립자료보관소, 유족회 사무실 등 과거사 청산 관련 기관기구들 입주

↑↑ 부에노스아이레스 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한 옛 해군기술학교 강당, <기억의 공간>으로 재탄생한 건물 유리창에 실종자의 사진이 빼곡히 인쇄돼 있다.

아르헨티나 방문 첫날, 옛 해군기술학교 부지에 과거사 청산을 위한 자료보관소, 실종자 가족, 부검의 단체 등 인권단체들이 입주해 있는 <기억의 공간>을 방문했다.

경산신문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던 코디네이터 후안 씨와 프레스담당 훌리아 씨, 사진담당 마리아노 씨의 안내로 시설들을 둘러보았다.

옛 해군기술학교 부지는 1998년 철거계획이 발표되면서 부각되어 이후 여러 인권단체의 항의로 2004년 보존 결정이 났으며, <기억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후안 씨는 납치되어온 실종자들이 자동차를 타고 정문을 통해 들어와 감금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후안 씨는 “아르헨티나에서 민간인들에 대한 납치는 1976년부터 1983년까지 군사정권 기간에 집중됐다”며 “이 <기억의 공간>에만 당시 약 5000명의 정치활동가, 20~30대 대학생 청년들, 사회주의자들이 군부에 의해 납치돼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고, 이후 ‘군인들이 시신을 비행기에 싣고 가 라플라타강에 유기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과거사 청산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또한 “‘임신한 여자도 감금됐으며 아기들은 강제로 입양됐다’는 증언은 할머니회 설립과 손자 찾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기억의 공간>에는 현재 국립자료보관소, 오월광장어머니회와 할머니회, 아들회, 부검의회 등 15개 관련 기구, 단체가 입주해 있다. 포틀랜드전쟁박물관도 군사정권이 자행했다는 이유로 함께 들어서 있다.

후안 씨에 따르면, 옛 해군기술학교는 강제 구금 기간은 물론이고 2000년까지 운영됐다. 군사정권이 끝나고 85년부터 가해 군인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지만, 최고위 군인들에 대해서만 처벌이 이루어졌다. 가해군인들에 대한 사면령이 폐지된 2004년부터 가해군인들에 대한 군사재판이 재개됐다.

전국적으로 800여 개의 불법 구금 장소가 확인됐으며 이 가운데 50여 개가 ‘기억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실종자 가족과 정부는 이 기간 약 3만 명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부검의사회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330명은 단체묘지에 안장됐다.

연간 기억공간을 찾는 사람은 수만 명, 가이드 신청을 하는 방문객만 2만 명 가까이 된다. 중고등학교는 기억공간에서의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특히 3월 24일을 메모리얼데이로 정해 모든 학교가 이날 추모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실종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가족의 이름 앞에 꽃을 꽂아놓고 갔다.

<기억의 공간>의 예산은 정부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정부에서 전액 지원한다. 실종자 가족회 등 인권단체는 <기억의 공간>의 독립적인 운영을 담보하고 있다.

후안 씨는 ‘정권 성향에 따라 퇴보할 가능성은 없느냐’는 질문에 “정부 정책으로 과거사 청산작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것이 국가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립자료보관소> 마르셀로 소장과 <기억의 공간> 연구위원인 다니엘 씨를 국립자료보관소에서 만났다.

다니엘 씨는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청산은 군사정권 치하에서 실종된 민간인들의 인권유린 사실을 밝혀 이것을 미래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여기만 보지 말고 전역에 걸쳐있는 감금시설들을 봐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다니엘 씨는 “과거사 청산작업은 국가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작업”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밝혔다.

또 “가족들은 가해 주체에 대한 처벌을 원하고 있지만 청산의 목표는 더 높은 곳에 있다”며 “(정국의)불확실성 속에서도 지금까지 청산작업을 해온 것이 중요하다”며 “덕분에 지금은 칠레 같은 남미국가들에서 과거사 청산 프로세스를 요청해오고 있다”고 그간의 아르헨티나 과거사 청산 작업의 의의를 설명했다. 가해군인들에 대한 재판기록이나 실종자 가족들이 보관하고 있는 실종자 관련 문서 수집은 79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당시 해군기술학교 재학생들의 증언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 씨는 “실종자들이 생기고 죽임을 당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죽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계속 이어갈 것”이라며 “반인륜범죄에는 시효가 없다”고 단언했다.

과거사 청산작업의 주체에 대해서도 “정부가 해야 하고, 정부정책으로 진행해야 우리 사회가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며 정부차원의 과거사 청산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니엘 씨는 이 과정에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정의 실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립자료보관소> 마르셀로 소장은 “과거사 청산의 프로세스에 대해 먼저 알려져야 하고 다음으로 정의가 실현돼야 한다”며 “가족, 인권단체들의 공론화 덕분에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밝혔다. 마르셀로 소장은 “이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기억의 공간>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무리의 앳된 학생들을 만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호세데산마르틴중학교 학생들이었는데 올해 두 번째 수업을 들으러 왔다고 했다. “관련 사진과 문서, 고문 장소 등을 둘러보고 죄의식과 무기력을 느낀다”는 학생들의 소감을 들으며 왜 기억의 공간이 필요한지를 실감했다. 무려 3500명이 학살된 폐광산이 있음에도 이곳을 기억의 공간으로 보존하자는 목소리를 지방정부가 철저히 외면한 경산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하루였다.

‘죽음의 비행’ 현장 라플라타강 언덕에 조성된 <메모리얼파크>
‘기억 진실 정의’ 콘셉트의 전세계 공모 작품 17개 설치

이튿날은 라플라타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조성된 <메모리얼파크>를 방문했다. 이 <메모리얼파크>는 ‘죽음의 비행’이라고 부르는, 옛 해군기술학교에 구금 중이던 실종자들의 시신을 비행기로 싣고 와 유기한 작전의 현장이라 실종자 가족과 인권단체들의 강력한 요구로 조성됐다.

조성과정은 이렇다. 1998년도에 공원 조성을 위한 부에노스아이레스시특별법이 제정돼 2001년에 착수했다. 총 14ha의 부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에서 기증받았다. 2007년 실종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벽이 조성되고 2010년 완공됐다. 특히 ‘진실, 정의, 기억’ 콘셉트로 국제공모를 진행, 출품된 총 700여 작품 가운데 학살의 히스토리를 잘 설명한 세계적인 예술작품 17점을 전시하고 학살의 아픔을 추모하고 있다. 지난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이 찾아 헌화한 곳으로도 알려졌다.

안내를 맡은 토마스 씨는 “은폐작전에 대응하기 위한 ‘기억’, 시신은 찾지 못했지만 학살은 ‘진실’이었으며, 비록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았지만 ‘정의’를 바로 세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주말에는 공원으로도 활용하고 있는데 이때는 5000명이 넘게 찾는다”고 말했다.

메모리얼파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에 <무제 Sin titulo>가 세워져 있다. 로베르토 아이젠베르그의 작품으로 대표적인 실종자인 여자와 남자, 임산부를 뜻한다. 몸통은 뚫려 있고 머리 부분은 차 있다. 

토마스 씨는 “학생들이 가장 먼저 찾는 작품인데 이 조형물을 통해 사건의 실체, 임산부가 왜 있는지, 그를 통해 입양아 문제까지 학생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다”며 “뚫린 몸통은 그 사이로 라플라타강을 바라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꽉 찬 머리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 작품 <무제>. 남녀 실종자와 임산부를 의미한다.

정식명칭이 ‘국가테러희생자기념비’인 새김벽에는 1969년부터 시작해 1976년에서 1983년까지 군사정권에 의해 실종된 민간인 900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길이 70미터 벽 4개로 이루어진 기념비는 지그재그 모양으로 배치돼 있다. 이렇게 배치한 이유는 ‘아물지 않는 상처’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공원에 왔을 때 학살과 관련된, ‘죽음의 비행’ 현장인 라플라타강, 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이 개최된 축구장,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등 은폐한 진실의 공간들을 볼 수 있도록 뚫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부분이 라플라타강으로 뚫린 것은 도시와 강을 연결한다고 한다.

새김벽은 3만 개의 벽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가운데 현재 신원이 밝혀진 실종자 8854명의 이름과 실종 당시의 나이가 연도별, 알파벳 순으로 새겨져 있다. 이후 신원이 확인될 경우 임산부 여부도 표기할 수 있도록 착탈식으로 만들어졌다. 건축가 알베르토의 작품으로 빈 공간에는 실종자의 이름이 계속 새겨지고 있다.

실종자 가운데 77년도에 새겨진 프랑스 신부의 경우, 조직원을 색출하기 위해 잠입한 군인이 이 신부에게 입맞춤하자 멀리서 보고 잡아갔다고 한다. 

처음에는 신원미상으로 묻혔는데 프랑스 정부가 수녀의 DNA를 찾아 신원을 밝혔다고 한다. 메모리얼파크에는 실종자들의 DNA를 보관하고 있는 DNA뱅크가 운영되고 있는데 현재 300명으로 추정되는 입양아 가운데 130명의 손자를 찾았다고 한다.

유해의 경우 부검의 단체에 의해 신원이 확인되면 가족에게 인계하는데 신원불명 시신의 경우 뼈째 보관 중이라고 한다. 80년 당시 의료시스템보다 발전해서 그때는 부자간에만 DNA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의료기술이 발달해 조손간에도 DNA 확인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메모리얼파크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억타워’는 중세 고문기구인 망치가 대통령궁에서 날아와 떨어진 형상으로 언덕에 박혀 있는데, 지난 군부의 인권탄압이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정치탄압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30000’이라는 작품은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기둥에 그려진 실종 시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실종된 3만 명을 찾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진실을 볼 수 있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작품 <30000>. 보는 위치에 따라 실종시인의 모습이 보이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파블로 미게스의 초상화 재구성’이라는 작품은 당시 14살로 최연소 실종자로 알려진 미게스의 실물 크기 그대로 바다에 부표처럼 띄워놓은 작품이다. 아르헨티나 출신 클라우디아 폰테스의 작품으로 ‘너무 어려서 풀려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부모들이 찾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실종된 줄 알았다’는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미게스의 마지막 생존 모습으로 강을 보고 등지고 떠 있다. 미게스 동상을 바라보며 프랑스, 미국, 스페인, 독일 등 각국의 정상들이 헌화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9년도에 이곳을 찾아 헌화했다.

옛 해군기술학교에 조성된 <기억의 공간>과 라플라타강 언덕에 조성된 <메모리얼파크>는 추모와 기념을 통해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기억의 역사화’가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과거사 청산의 마지막 프로세스인 ‘과거사의 비극을 후속세대에게 교육하는 일’을 담당하는 ‘기억의 역사화’야말로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기억의 공간’을 외면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가르치면서 역사의 현장을 방치해 이윽고 기억마저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이번 아르헨티나 취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현지 실크로드여행사 정성주 대표와 재아르헨티나 한인상인연합회 모니카 사무국장의 도움이 컸다. 두 분에게 감사드린다. <끝>

최승호 발행인
사진 견석기 다큐멘터리 사진가
영상 어성호 기자
자료정리 및 교열 박선영 온마을TV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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