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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구환경 백재호

어디 아픈 데 없냐고 지구별이 물었다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2.10.06 15:03 수정 2022.10.18 10:45

 
↑↑ 백재호 녹색당 경북도당위원장 대구환경연합 수질분과장.
과학자, 제임스러브록은 지구를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 빗대어 설명한다. 가이아는 수많은 생명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 생명이 살기 위한 지구에 일정한 패턴을 가지는 질서와 지구환경을 유지하는 '생명유지 항상성'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극지방의 얼음과 히말라야와 유럽의 만년설 시베리아 동토가 녹고 고위도에서의 태풍 발생이나 해류의 변화 등 이런 지구에 익숙하지 않는 다양한 변화들은 결국 생명을 위한 지구별 항상성을 지키기 위한 '가이아의 행위들'은 아닐까?

그러나 면역력을 잃은 인체가 병들어 죽듯 자정력을 상실한 강물이 오염되듯 지구별의 항상성을 지키려는 가이아의 몸부림도 그 임계점을 넘기면 인류를 포함한 수많은 생명들은 절멸할 것이다. 이것은 결국 인류가 살고있는 지구를 떠나 또다른 행성을 찾는다는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지구가 잘 있을때 보존하지 못한 바보같은 인류의 모습처럼 될것이다.

이런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지역 경산에서 탄생한 원효와 요석의 삶과 사랑을 쓴 소설 '발원'으로 잘 알려진 김선우작가의 책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란 인도 오르빌에 살면서 쓴 에세이는 망망대해에 인류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가란 나침반 같은 방향을 제시해준다.

오르빌은 '새벽의 도시'라는 뜻으로 모든 인간이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이상을 꿈꾼다. 전 세계 40여 개국 2천여 명이 모여 평화와 공존을 실현하고 있는 생태공동체이다.

1954년 오르빌에 오르빌리언은 남인도 벵골 만의 후미진 황무지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다. 그 사막과 같은 황무지에 나무를 심는다는 행위를 보고 대부분 미친 짓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오르빌리언들은 묵묵히 나무를 심었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곳은 2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 나무들의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왜냐면 오르빌은 원래 존재한 것이 아니라 척박한 그 곳에 그들이 스스로 심은 것은 나무를 통한 희망과 꿈이었기 때문이다.

물신주의 속의 인간은 언제쯤 어머니 대지를 돈으로 환산해야 잘 살 수 있다는 착각에 벗어날까? 땅의 의미를 잊은 지는 이미 오래다. 인간이 순수한 땅의 감각을 잃고 얼마나 삶의 의미를 자각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를 만든 작금의 세상을 보면 아이들은 기성세대가 만든 무한경쟁의 아귀다툼 속에서 절망의 늪에 빠져들고, 기형적인 자본주의가 맹목적인 종교처럼 오직 돈벌이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버린 세상과, 지역공동체를 파괴하는 썩은 정치는 공공의 자본획득만이 정치성공의 척도라는 괴상한 집단환각으로 존재하고있다.

생명에 대한 연민도 없고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정치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다. 그것들이 부재된 정치는 결국 폭력으로 다가온다.

우리 시대 비극의 근원적 화두는 행복하게 살기위해 몸부림 치는 것들이 사실은 그 행복과는 무관함을 깨닫지 못한다는 진정한 시대성찰 없음에 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실상은 우리가 시대에 사육당하여 사는 것 이기에, 더욱 절망스러운 현실이다.

이런 현실속에 오르빌의 설립자 인 마더의 창립취지문은 더운날 한줄기 시원한 바람과 같다.

창립취지문 A Dream의 내용중 일부를 보면 "이곳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영혼과 교감을 잃지 않은 채 온전히 성장해갈 것이다. 교육은 시험을 통과하고 자격과 지위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가꾸어 새로운 재능을 일구어내기 위한 것으로 주어질 것이다...

물질적 부와 사회적 지위로 인한 가치보다 각 개인의 장점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일은 생계를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 봉사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하고 능력과 가능성을 발굴하는 도구로서 존재하며, 결과적으로 각자에게 생계와 전공 분야를 제공할 것이다. 이곳은 경쟁과 싸움의 논리에 근거한 사람 관계가 아니라 향상과 협력을 위한 선의의 경쟁관계, 진정한 우애가 대신하는 곳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오르빌의 꿈은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 강조한다. 오르빌은 이런 시대의 절망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란 비젼을 보여준다. 우리의 시대현실도 수많은 갈등의 내면엔 이런 가치, 이상과 희망의 본질을 이루고자하는 무의식에 대항하는 수많은 싸움들이 있다.

목적지향점의 상실 시대에 시대가 나아갈 바의 팩트를 분명히 가지는 것은 중요한일이다. 그래서 이 세상이 더 좋은 세상으로 바뀌어야 함에 있어 사회구성원들의 구체적 행동은 중요할것이다.

오르빌을 보며 기후 위기시대에 대중이 할수 있는 강력한 행동은 '나무심기'와 '에너지독립'이라고 생각한다.

나무심기는 온실가스를 흡수하고 지구의 복사열을 막을수 있는 개인이 할수있는 최선의 방법중 하나다. 또한 개인의 에너지 독립은 도시에 가정에 소형태양광이나 소형 풍력을 이용하고 더불어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으며 전기에너지를 생산에 가정용축전기에 저축한다면 대규모 화석발전소나 핵발전소 그에 따르는 송전탑 문제도 어느정도 해결될 것이다.

오르빌공동체처럼 가정마다 전기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물론 이런 개별적행동도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확대 반영되어야 한다. 로컬푸드를 개념으로 '지역의 소비에너지는 지역에서 생산'하도록 로컬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해야한다.

핵발전소나 석탄발전소 뿐 아니라 지금처럼 산림과 농지와 염전을 파괴하는 본래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대규모 자연순환에너지 정책은 지양하고 도시의 에너지는 도시 이외지역에서 희생을 강요하며 생산하는 것이 아니가 도시에서 스스로 생산하고 소비할수 있도록 해야한다.

예로들면 Bipv(건물일체형 태양광발전)이나 건물옥상에 소형풍력설치 그리고 강변이나 공영주차장 도로변 등 공공의 유휴지를 통해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소비해야한다.

이런 도시에너지자립은 덤으로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고압송전탑 선하지 문제도 해결할수 있다.

탄소배출규제와 더불어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열대우림보존감당못할 쓰레기를 만드는 대량생산소비의 문제와 바다쓰레기 수거문제,핵폐기물과 원자로를 식히는 핵발전소 냉각수 열공해문제, 농업문제 등등 해결해야할 수많은 문제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수있는 물방울같은 작은것부터 시작해서 해결하다 보면 강과 바다처럼 커다란 문제도 해결되리라 생각된다.

궁극적으로 "인류의 탐욕을 줄여야 한다"는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책 속에 오르빌 공동체를 바라본 작가의 메시지는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나아갈 바를 보여주고, 그 가치지향의 접점을 서로 연대하고 행하는 것이, 이 시대의 난관을 극복하는 수많은 장도행중 하나는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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