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청산 또는 정리는 흔히 진실규명 피해자의 명예회복, 가해자의 법적 책임 규명과 처벌을 통한 ‘정의’의 실현,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화해와 통합, 그리고 과거사의 비극을 후속세대에게 교육하는 일 등을 포함한다.
가해자 처벌로 상징되는‘정의’의 실현을 우선시하는 사례뿐만 아니라 그것이 야기할지 모를 대립과 갈등을 고려해 ‘정의’를 관철시키기보다 예컨대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을 바탕으로 우회적인 화해정책을 구사하는 경우를 비롯해 해당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태가 펼쳐진다.
아주대 박구병 교수는 ‘진실화해위원회 이후: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배보상과 추모정책’ 논문에서 대개 사법적 정의의 실현보다는 위원회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방식이 선호되고 그 뒤 배·보상을 통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수순을 따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사법처리는 가해자의 처벌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 기보다 책임규명과 배·보상을 위한 선결조건으로 여겨지곤 한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주 4.3부터 여순,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한 처리 방식에서 볼 때 사법적 정의의 실현보다는 위원회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방식이 선호되고 그뒤 배·보상을 통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수순을 따르고 있다.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2기 위원회로 넘어오는데 무려 10년이 걸렸지만, 강산이 한번 바뀌고 그 사이 각 사회분야는 엄청남 변화를 가져왔지만 과거사청산을 바라보는 시각은 오히려 좁아졌다. 진실규명을 위한 조사도 발굴도 1기보다는 쉽지 않다. 그 많은 신청건수에도 불구하고 조사관은 더 모자란다.
진실규명을 위한 절차도 더 까다로워졌으며, 일흔 고령의 유족보다는 한참 윗세대인 참고인들이 조사를 기다리다 돌아가시는 마당에 상부에서는 1기 진실규명조차도 전면 재조사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는다고 한다.
이런 우리나라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타개해 보고자 경산신문은 자매지인 온마을TV와 ‘제노사이드, 이후 반성과 화해의 길’ 이라는 주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 3차 기획취재에 응모해 선정, 추석 이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다녀왔다. 70-80년대 군부에 의해 3만 명이 실종된 아르헨티나가 왜 남미에서는 과거사청산의 롤모델로 꼽히는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를 돌아보면서 알 수 있었다.
세계2차대전 이후 설치된 최초의 공식적인 국가폭력 진상조사위원회가 설치된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청산에서 배울 점은 ‘정의실현’과 ‘기억의 역사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특히나 “바람직한 과거사정리는 진상규명의 단계를 넘어 비극적인 과거사가 남긴 상흔의 치유, 진지한 화해와 ‘윤리적 기억’을 지향해야 한다”는 Lerner Febres의 지적을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 2005년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설치된 후 15년 만에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는 우리나라가 아르헨티나의 과거사청산에서 무엇을 배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