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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지에 있는 구 해군기술학교 <기억의 공간> 건물 앞에서 오른쪽부터 프레스 담당 훌리아, 코디네이터 후안 씨가 <기억의 공간> 조성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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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라틴아메리카 과거사 청산의 모범국가 아르헨티나 한국전쟁 전후 군경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학살사건이 일어난 경산지역에는 72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지난 2009년 1차 진실규명으로 120여 명의 유가족이 진실규명 결정을 받아 국가의 배·보상을 받았지만, 지난해 2차 진실규명을 신청한 75명의 유가족은 9월 20일 현재 배·보상은커녕 진실규명조차 받지 못했다.
이에 경산신문은 군사정권에 의한 국가폭력을 경험한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모범적인 과거사 정리모델로 알려진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설치된 공식적인 국가폭력에 의한 진상조사위원회 모델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실종자진상규명국가위원회(나중에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정의 실현과 국가자료보관소 설치 및 기억공간과 메모리얼파크 조성 등 기억의 역사화에서도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고 있다.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어렵게 출범한 대한민국이 어떻게 바람직한 과거사 청산 프로세스를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도움이 되고자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진행하는 3차 기획취재에 응모해 선정, 자매언론인 경산I뉴스와 온마을tv 사진영상담당 기자들과 9박 10일간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9박 10일이라 하지만 가는 데 이틀, 오는 데 이틀 걸렸으니 사실은 5박 6일인 셈이다. 뉴욕을 경유해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가는데 비행시간만 총 25시간 이상 걸리는 머나먼 길이었다.
취재를 떠나기 전 아르헨티나에 대한 선입견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수레에 돈을 싣고 장을 보러 가야 할 정도라는 것과 부통령이던 크리스티나에 대한 암살미수 사건으로 정국마저 혼란해 과연 제대로 된 취재는커녕 예약된 비행 일정에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러나 새벽 4시에 내린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 이같은 선입견은 금방 깨지고 말았다. 1200만 명에 이르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은 특별시민이라는 자부심으로 일상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극심한 인플레와 환율 인상에도 시민들의 삶은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정의 실현,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가장 중요한 과거사 청산 프로세스
이번 취재는 당초 아르헨티나 과거사 관련 기구나 유족회 관계자를 통해 희생자에 대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배·보상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이후 화해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알아보고자 계획됐다.
또한 전 해군기술학교에 건립된 기억자료보관소, 다른 지역에 설립된 추모공원과 기념물을 찾아 바람직한 기억 모델을 보고, 향후 경산지역의 집단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후세 교육적인 장소로서 기억의 공간을 건립하는 데 도움을 받고자 했다.
일반적인 과거사 정리 또는 청산은 진실규명과 피해자의 명예 회복, 가해자의 책임규명과 처벌,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화해와 통합, 그리고 과거사의 비극을 후속세대에게 교육하는 일등을 포함한다.(박구병, 진실화해위원회 이후: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배·보상과 추모 정책) 진실규명 신청과 조사, 재판, 사면, 그리고 배·보상과 화해, 추모, 기념 등의 프로세스가 작동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배·보상과 화해보다는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정의 실현’과 추모와 기념이라는 ‘기억의 역사화’가 중요시되고 있었다.
지난 15일 목요일 오후 대통령궁이 보이는 5월광장에 위치한 오월광장어머니회를 찾았다.
광주오월어머니회와도 여러 차례 교류를 가진 이들은 실종된 아들의 사진도 들지 않는다. ‘모든 자식이 내 자식’이며 ‘내 자식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보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죽인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날 취재진을 만난 헤베 데 보나피니 회장은 ‘두건을 쓰고 인터뷰하고 싶다’며 ‘두건을 쓸 때마다 자식을 포옹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초창기 두건이 갓난아기들이 차는 기저귀로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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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월의 광장어머니회 헤베 회장이 경산신문과 인터뷰한 후 선물을 전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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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베 회장은 “우리는 실종자들의 시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의를 찾고 있다”며 “자식들은 남을 위해 희생했기 때문에 우리는 남을 위해 즉, 사회적 약자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식의 불행으로 부모의 이득을 찾지 않고, 대신 빈곤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 1979년 8월 발족한 오월광장어머니회는 ‘자녀들의 핏값을 대신할 수 없다’며 모든 형태의 배·보상금 수령을 거부해왔다. 흰 두건을 쓰고 이날로 2318회차 목요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어머니회는 진상규명을 통해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정부 차원의 배·보상을 거부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반면, 정치적 견해 차이도 있지만 배·보상이 정부의 책임을 상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있는 오월광장어머니회-설립자노선(86년 설립)이라는 단체도 있다.
어머니회에 비해 손자들을 잃은 할머니회는 조금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할머니회는 ‘연필의 날’로 불리는 1976년 9월 16일 납치된 중고생 16명을 찾기 위해 설립됐다.
10월 설립돼 지금까지 130명의 손자를 찾았다고 한다. 할머니회 디렉터인 하우라 산소네 씨는 “실종 당시 임산부였던 자식의 손자들이 가해 경찰에 전리품처럼 강제로 입양되기도 했다”며 “칠레 우루과이에서도 입양아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입양한 양부모가 사실을 밝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입양사실을 숨기고 있다”며 “현재 확인된 입양자 가운데 장관도 있고, 할머니회 부회장의 손자도 있다. 회장은 2014년에 손자를 찾았다. 할머니회 회원들은 대부분 90세를 넘기고 있지만 손자를 찾는 일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소네 씨는 “다른 한편에서는 ‘친부모도 잃었는데 양부모까지 잃어야 합니까’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엄연한 국가범죄이기 때문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이 같은 불법적인 입양 사실을 모두 알아야 한다는 것이 할머니회의 입장”이라고 정의 실현을 강조했다.
할머니회 회원인 아우슈츠비츠 생존자 할머니가 처음으로 썼다는 ‘침묵도 그만, 증오도 그만’은 아르헨티나 과거사 정리를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다.
오는 11월 말경 재아르헨티나 기업인의 제안으로 할머니회와 부검의회 사무실 가운데 소녀상이 건립될 예정이고, 12월에는 임흥순 작가의 전시회도 기억의 공간 내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가테러리즘에 희생된 만국의 시민들의 국제적인 연대의 중요성을 담고 있다고 했다. 그 연대의 목표도 바로 ‘정의 실현’으로 귀결된다고 하겠다.
아르헨티나에서의 마지막 날 실종자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우론도식당을 운영하는 하비에르 우론도 씨는 시인이자 언론인이었던 아버지와 누나, 자형이 함께 실종됐다고 한다. 큰 누나의 친구 남편도 실종됐다.
파고 우론도로 불린 아버지 프란시스코 우론도는 실종 당시 46세, 자신은 19살이었다. 처음에는 사회주의자였으나 나중에 쿠바정부의 초청으로 쿠바를 방문하는 등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시인과 교류했던 아버지는 쿠바혁명에 영향을 받아 페론주의자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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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와 누나, 자형을 군사정권에 잃은 우론도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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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으로 살았던 우론도 씨 가족은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실종 후 어머니는 서점에서, 자신은 세라믹공장에서 일하며 어렵게 버텨왔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19년 전부터 식당을 운영해 지금은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찾았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청산 작업에 대해 우론도 씨는 “국가가 학살을 인정한 셈이니까 어느 정도 만족한다”면서도 “당시 아르헨티나 탄압체제를 군사정권이 아니라 군사민주정권이라고 불러야 한다. 가해자 장본인만 처벌됐을 뿐 그들로 인해 이득을 본 공범들은 처벌받지 않았다”며 여전히 ‘정의 실현’을 강조했다.
글 최승호 기자
사진 견석기 다큐멘터리 사진가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