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은 2015년 완공 이래 지금까지 많은 관람객과 이용객이 찾는 명소 중 하나다. 이 공원은 경산시의 역사적 연원을 둔 원효·설총·일연 등 세 성현(聖賢)의 업적과 정신적 유산을 계승하는 한편 시민들의 휴식과 문화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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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산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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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원이 조성되기 이전 이곳은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야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의 시간을 거슬러 2007년으로 돌아가보자.
2007년 경산시청은 남산면 인흥리 250번지 일원에 공원 조성사업을 계획했다. 사업에 앞서 매장문화재를 확인하기 위한 고고학적 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이곳에는 나지막한 구릉지로 주변 일대에는 복숭아, 포도 등 과수원으로 활용되었고, 드문드문 관리되지 않은 현대 민묘도 일부 확인됐다.
조사를 맡은 한빛문화재연구원(당시 대경문화재연구원)은 지표조사를 먼저 진행했고, 그 결과 구릉지의 주변에서 고려~조선시대로 추정되는 토기편, 자기편, 기와편 등의 유물을 채집했다.
지표조사의 결과에 의거해 시굴조사가 2009년 9월부터 약 4개월 동안 진행됐고, 구릉지의 북동쪽 사면에서 조선시대 적심건물지와 수혈, 주혈 등의 생활유구가 확인됐다. 따라서 지표조사 내용과 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생활유구를 통해 정밀발굴조사가 확정됐다.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 2기, 조선시대 적심건물지 3동, 굴립주건물지 3동, 수혈주거지 3동, 수혈유구 5기, 구상유구 14기, 널무덤(토광묘:土壙墓) 16기,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 4기 등 총 50기 유구와 삼국시대 뚜껑있는 굽다리접시(有蓋高杯), 뚜껑(蓋), 사발(碗), 조선시대 분청사기사발, 분청사기접시, 분청사기병, 백자사발, 백자잔, 수키와, 암키와, 청동숟가락 등 총 95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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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산 인흥리 유적(삼성현역사문화공원) 조사 중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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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를 대표하는 유구와 그 성격을 살펴보면, 먼저 삼국시대 돌덧널무덤은 구릉 북쪽 능선 상부와 중앙부에 각각 1기씩 확인됐다. 돌덧널무덤은 무덤구덩이를 우선 파고, 그 내부 외곽으로 돌을 쌓고, 시신이 있는 나무관과 각종 부장 유물을 함께 안치 후, 흙을 덮는 구조이다.
돌덧널무덤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매장 순서나 형태(돌을 쌓는 방식, 바닥 처리 방법, 부장 유물의 수량 및 품질 등)가 조금씩 다르지만, 본 유적의 돌덧널무덤은 후대의 자연 삭평과 교란 상태가 매우 심각해 그 상세 구조나 세부 형태를 명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부장 유물을 검토 결과, 그 축조 시기는 대략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으로 확인된다. 이곳의 유물은 경산 임당동·조영동유적, 대원리·신제리·광석리유적, 대구 욱수동유적 등 인근 고분에서 확인되는 무덤 중 다소 늦은 시기와 연결된다.
조선시대 생활유구는 적심건물지, 굴립주건물지, 수혈주거지 그리고 무덤유구가 확인되었다. 생활유구 대부분은 현재 공원 주차장 부근 구릉 말단부에서 주로 확인됐다. 그 중 적심건물지는 적심의 구조를 갖춘 건물지를 의미한다.
이곳에서 확인된 적심건물지 1호는 정면 2칸×측면 1칸 건물지가 2동, 정면·측면 각 1칸 건물지가 1동, 그리고 출입시설, 배수시설, 담장시설이 갖춰진 곳이다.
이런 세트 시설이 잘 남아 있는 구조는 주변 건물지와 비교할 때, 규모가 어느 정도 있었음을 추정하게 한다. 경산 중산동유적, 현내리유적에서도 유사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공원 내 야외공연장 부근에는 조선시대 대표 무덤인 널무덤이 확인됐다.
통상 조선시대 널무덤 내부에는 여러 식기류(청동, 청자, 백자 등), 거울, 구슬, 반지, 비녀, 동전 등 각종 장신구류를 함께 부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에는 청동숟가락만 확인됐다. 무덤의 형태와 규모 등을 보았을 때 경산 상방동유적과 유사하다.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기 이전 인흥리 일대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조영하고, 일부 생활공간으로 거주했다. 인근 임당동과 조영동, 중산동과 욱수동에 이르기까지 주변 일대와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상호 교류·소통하면서 고대 이곳의 사람들은 삶을 영위했다.
현재는 세 성현의 정신을 체험·경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지만, 이곳의 매장문화재 발굴은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