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살지만 필자에게서 경산에 대한 이미지는 역사가 오랜 곳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상은 유적 발굴에 대한 뉴스로 인해 갖게 된 듯하다. 사실 우리는 선사시대나 고대의 유물이 공사현장에서 나왔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된다.
대개는 자기가 사는 지역이 아니거나 역사 전공자가 아니면 무심코 지나친다. 필자의 경우 역사학이나 고고학 전공자가 아니지만 흥미를 느끼곤 해 자세히 살펴보는 편인데, 문득 무관심한 일반적 이유가 유적 발굴 소식이 잦다 보니 둔감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신석기시대부터 우리나라 즉, 부속 섬을 포함한 한반도는 다른 지역보다 인구밀도가 훨씬 높았기에 고분이나 집자리 등의 유적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당연한 사실을 말한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근자에 깨달은 것이라 나름으로 의미를 두고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지금의 한반도 지형은 BC 만 년을 전후해 빙하기가 끝난 후 이루어졌다. 아프리카 동부에서 출현한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빙하기가 끝나기 전에 북방과 남방을 거쳐 지금의 한반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왔다. 낮아진 해수면으로 인해 남방으로도 오기가 쉬웠다고 한다.
해빙되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금의 지형이 되고는, 연륙되어 있던 중국과 일본 사이에 바다가 생기니 이미 이른 사람들은 계속 머물러 살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동북아에서 대륙의 일부로는 가장 남쪽인 한반도는 간빙기가 되자 동식물이 번성하면서 활발한 수렵과 어로, 식물 채집이 가능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보면 한반도는 여러 곳에서 이동해 온 사람들이 차곡차곡 정착한 곳이었을 법하다. 당시의 생산경제로는 한반도의 지형도 정착에 적합했다고 보인다. 노년기 산지가 많은 지형적 특성상 선상지, 하안단구가 발달하고 그 아래 범람원이 형성한 크고 작은 충적평야가 곳곳에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며 자리 잡기 좋았다. 충북 청원군 소로리 구석기 유적 토탄층에서 나온 1만 3천년 전의 야생 볍씨는 채집이기는 하나 신석기시대 전부터 사람의 수가 많았음을 짐작게 한다. 한편 이러한 한반도에서 산지와 평지의 비율이 평균에 가까운 경산 역시 인구밀도가 높았다고 보인다.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볼 때 경산은 금호강과 그 지류인 오목천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삼한시대 지배층 고분군인 임당동, 조영동, 부적리 고분군들은 금호강과 오목천, 남천이 합류하는 지대 안쪽의 구릉성 산지에 분포하고 있고, 그 남쪽과 서쪽으로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5년 전 이들보다 이른 시기인 AD 1세기경의 수장급 고분들이 발굴된 하양 양지리는 경산의 가장 넓은 충적지인 금호평야를 앞에 두고 조산천 유역의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보니 경산의 대표적인 삼한시대 유적들은 인구 밀집과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충분히 유추될 수 있다.
물론 삼한시대에 해당하는 2,000~1,500년 전의 경산 지형은 현재와 같지 않았을 테다. 가장 큰 차이는 하천의 유로와 연안의 지형에 있다고 추정된다. 지금보다는 아무래도 하천의 범람이 자주, 넓게 일어났을 것이므로 그렇게 볼 수 있다.
범람지역이 달랐다면 배후습지라든지 주거지역의 위치도 차이가 났을 텐데, 일부는 아마도 좀더 고지대나 산지 말단부에 가까웠을 것이다. 임당동 등 고분군들은 금호강 지류인 오목천 하류와 남천의 하류 사이에 북동-남서로 열을 지어 위치하는데 이들 고분군에 올라가 보면 남, 서, 북쪽으로 벌판이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도굴로 많이 훼손된 상태에서 발굴된 유물로는 4~6세기 신라의 지배 흔적이 나타나지만 압독국의 유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양지리 고분의 경우 가까운 금호평야를 기반으로 하는 집단의 것이다. 이중 목관묘에서 나온 부장품들이 최고 수장급의 것들로서 영천, 창원, 경주, 성주 등지에서 나온 수장급의 유물들과 수준이 같거나 능가한다고 한다. 소국의 중심지인 국읍에서나 출토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이 일대에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정착한 큰 집단의 형성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물론 기원 전후의 이러한 양상은 청동기시대 혈연을 바탕으로 하는 족장사회가 곳곳에 분포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경산에 산재하는 지석묘군의 존재로 증명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