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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피해자 유족끼리 반목하지 않기를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2.08.25 10:28 수정 2022.08.25 10:28

경산지역에는 한국전쟁을 전후로 3가지 유형의 민간인집단희생사건이 있다. 그들은 각각의 유족회를 구성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첫 번째는 지난 1949년 11월 29일, 팔공산 갓바위 근처에 은신하고 있던 무장공비에게 한 마을 주민 38명이 졸지에 목숨을 잃은 와촌면 박사리사건유족회다. 두 번째는 한국전쟁 직전 군경이나 우익에 희생된 한국전쟁전 경산유족회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 전후 코발트광산과 인근 대원골에서 약 3500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지역 내 가장 큰 규모의 사단법인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회장 나정태)다.
 
그런 유족회가 지난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72주년을 맞이해 한자리에 모였다.
사단법인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와 박사리유족회가 이날 역사적 상처와 화해를 위한 자리에 마주 앉아 그동안의 아픔을 위로하고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자고 덕담을 나눈 것이다.

특히 이 자리에서 윤성해 박사리유족회장은 인사말에서 “우리는 그동안 말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 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코발트광산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동병상련을 겪으며 지난 70여 년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삶들을 뒤돌아봤다. 나정태 코발트광산유족회장은 “같은 피해자이면서 서로 외면하며 살아왔던 지난 세월이 야속하다”며 “앞으로는 합동위령제도 지내고 특별법 제정에 뜻을 모으는 등 서로 간에 왕래도 하며 살아가자”고 말했다.
 
그동안 이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집단희생사건 유족 가운데 적대세력(빨치산)에 의한 피해자 유족들은 국민보도연맹원을 좌익으로 간주해 이들이 자신들의 부모형제를 죽인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유족들을 적대시해 왔다. 한 지역에 있으면서도 교류가 없다 보니 박사리 일부 유족들은 코발트광산 유족을 가해자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북시민재단 주관으로 열린 ‘역사적 상처의 치유와 화해를 위한 평화문화 캠페인’은 그동안의 오해와 앙금을 풀고 화해를 위해 나아가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이날 두 유족회 회원들은 그동안 아껴왔던 자신들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향후 두 유족회가 지역에서 어떻게 협력해 나갈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아가 경산지역의 인권의식 고취 및 평화문화의 정착과 확산으로 이어가기 위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가기로 약속했다.

코발트유족회와 박사리유족회의 만남은 단순히 두 유족회 간의 만남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이날 포럼 발제를 맡은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김문주 교수와 미술중심 보물섬 최성규 작가는는 코발트와 박사리사건은 보수 진보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라며 세 유족회의 만남을 통한 치유와 화해를 넘어 시민교육으로 확산되어야 진정한 화해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본지는 지난 8월부터 5회에 걸쳐 제노사이드 이후 반성과 화해를 주제로 국내와 기획취재를 진행 중이다. 코발트광산과 박사리유족 외에도 가해자와 피해자 간 결혼으로 화해를 이룬 영암 구림마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배보상과 기억의 역사화 과정을 취재보도함으로써 바람직한 과거사 정리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특히 경산지역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화해와 통합, 그리고 과거사의 비극을 후속세대에게 교육하는 일을 시작함으로써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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