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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연구자료공유 기획연재 (15)] 경산 상방동에 남겨진 고려~조선시대 무덤 이야기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2.07.27 11:12 수정 2022.11.03 15:03

 

(재)한빛문화재연구원-경산신문 MOU               지역연구자료공유 기획연재 (15)

 
↑↑ 장정민 (재)한빛문화재연구원 조사실장.
경산시청은 상방동 산2-1번지 일원에 남매근린생활시설(경산 수영장)건립을 계획하고 사업에 앞서 문화재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발굴조사는 입찰에 의해 한빛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하게 됐고 조사결과 석곽묘(석곽묘;石槨墓)와 토광묘(土壙墓) 등 75기의 무덤 이 확인됐다. 주변으로 자연마당 유적,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등 삼국시대 무덤이 산재하고 있다면 상방동 산2-1번지 유적은 고려-조선시대 토광묘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토광묘는 62기가 확인됐으며 축조방법은 등고선과 직교한 북서-남동향을 두고 있다. 생토면을 장방형으로 파고 목관을 안치한 후 묘광과 목관사이에 청석편과 흙을 섞어서 채웠다. 1기의 토광묘에서 목관위에 청석으로 덮개돌을 한 사례가 있는 것을 보면, 일부 유구는 개석(蓋石)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시설은 생토면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고운 흙을 깔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규모가 작거나 굴착 방법에 있어 정연하지 않은 일부 토광묘는 목관을 사용하지 않고 직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은 자기류, 토기류, 장신구류, 철기류, 청동류 등 237점이 출토됐다. 이 가운데 자기류는 청자와 분청사기, 흑유, 백자류로 구분됐는데 출토량으로 보면 청자류가 2/3정도를 차지하고 백자류와 분청사기, 흑유 순이다. 청자류의 기형은 대접, 접시, 완(碗), 발(鉢), 병 등으로 나타났으며 시기적으로 고려 전기에서 중기에 걸친 유물이 주를 차지했다. 이에 비하여 분청사기는 조선전기, 백자류는 16세기전후 작품들이었다.
 
토기류는 토기병, 잔, 배(杯) 등이 수습됐는데 기종별로 고찰한 결과 고려 중기 이후의 유물로 판단됐다. 장신구류는 구슬과, 동곶, 비녀 등이 수습됐다. 시기를 알 수 있는 유물은 없지만, 특이한 유물로는 비녀를 꼽을 수 있다. 수습된 비녀는 잠두의 장식으로 형식분류를 하면 화엽잠에 해당되는 유물이다. 비녀는 신분에 따라서 재질이나 기형을 달리하는데 조선시대 서민녀가 나무, 뿔 등을 사용한 것을 보면, 금번 출토품은 신분이 있는 사람의 비녀로 판단된다.
 
철기류는 관정과 관고리와 고리형 철기 및 철제가위 등이 수습됐다. 관정은 길이와 형태 등으로 보아서 고려시대 관정과 조선시대 관정으로 구분됐다. 또 철제가위는 수염이나 머리카락을 다듬는 도구로 부장됐는데 여기서는 이승과의 인연을 자르는 도구로 상징성을 부여함도 타당할 듯하다. X자형 철제가위는 16-17세기 유물로 편년하고 있어서, 유적시기를 가름하는데 도움이 된다.
 
청동류는 청동합, 청동접시, 청동발, 청동완, 청동숟가락, 청동젓가락, 동전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청동합, 청동접시, 청동발, 청동완 등은 기형이나 공반된 유물로 보아서 고려시대 중기에 해당되는 유물이다.

청동숟가락은 35점이 수습됐고 청동젓가락은 2세트가 수습됐다. 청동숟가락은 시부의 형식으로 유엽형(柳葉形)과 장타원형(長楕圓形)으로 나누며 금번 출토품은 유엽형 일색이다. 병부는 약시형, 연미형, 반원형으로 분류되고 이러한 유물들은 대체적으로 15-16세기에 해당하는 유물이었다.

동전은 무덤에 매납(埋納)하는 이유가 피장자의 부와 번영을 기원하고 잡신 등으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저 세상으로 가도록 값을 치루는 벽사(僻邪)의 의미를 가진다고 알려져 있다. 

그와 함께 동전을 매납하는 것은 한족의 풍습으로 북송과 남송, 요와 금, 원의 분묘 부장품을 살펴보니, 북송과 남송, 금 순으로 매납비가 높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고려-조선시대묘에서 출토되는 동전은 대부분 중국전이며, 그 중 일부에 개원통보도 포함되어 있지만, 북송전이 대부분이다. 

조선전기 분묘에서는 조선통보가 부장되지만 조선통보(朝鮮通寶;세종 5년 1423)가 부장되는 분묘는 부장품이 풍부한 예가 많고, 동전은 관의 바닥 전면에서 출토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 조선 후기가 되면 분묘내부에 자기 한점과 상평통보(常平通寶) 한점, 또는 청전이나 일본전 약간을 부장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유적에서 출토된 동전은 조선통보 5점, 숭녕중보(崇寧重寶;1103) 3점, 경우원보(1034-1038) 2점, 개원통보(開元通寶;998-1008) 1점, 희녕중보(熙寧重寶;1068-1077) 1점, 황송통보(皇宋通寶;1023-1063) 1점 등 총 13점이다. 서체는 조선통보만 해서체(楷書體)이고 나머지는 모두 전서체(篆書體)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술한 유구와 출토유물로 볼 때 경산 남매근린공원부지 내 유적은 고려시대에서 조선전기에 속하는 분묘유적이자 유물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묻힌 피장자들의 신분도 유물로 볼 때 평민이거나 이 지역에서 나름 재력을 가진 유력자들로 보이며, 특히 청자와 중국화폐를 소유한 것을 보면 교역에도 관여한 사람들로 추정된다.

↑↑ 상방동2-1번지 유적 전경.

↑↑ 출토유물(동전,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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