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빛문화재연구원-경산신문 MOU 지역연구자료공유 기획연재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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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정민 (재)한빛문화재연구원 조사실장. |
경산시청 주차장 북쪽 나지막한 구릉지에 자연마당이라는 생태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각종 수목과 식물들을 복원하여 자연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휴식 공간으로 탈바꿈 되어 눈과 마음이 편안해지기 그지없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은 자연마당이 실용성 있는 공간으로 시민들의 품에 돌아왔지만 2016년 대대적인 발굴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과수원, 밭 등의 경작지와 수목이 무성한 곳이었으며, 일반 시민들이 접근하기에 어려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자연마당 경작지 지표면과 얕은 골짜기 등지에서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면서 경산의 또 다른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 시작됐다.
자연마당 발굴을 시행하기 전 지하에 유적의 잔존여부를 밝히기 위한 시굴조사를 진행했다. 구릉 전면에 완전한 형태의 유적은 아니지만 삼국시대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과 부장품인 토기들이 다수 확인됐다. 유적의 훼손을 막고 역사의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경산시청은 자연마당 산책로 구간에 대해 발굴조사를 시행하기로 하고 (재)한빛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하여 2016년 02월 16일부터 현장조사 41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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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마당 원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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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로 삼국시대 덧널무덤(목곽묘;木槨墓) 2기,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 20기, 돌방무덤(석실묘;石室墓)1기, 고려시대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 7기, 고려∼조선시대 토광묘(土壙墓)11기 등 총 45기의 무덤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구는 삼국시대 돌덧널무덤이 대부분이고, 고려~조선시대 토광묘와 삼국시대 덧널무덤과 돌방무덤이 확인됐다.
먼저 삼국시대 덧널무덤은 구릉정상부에서 2기가 확인되었는데 유구와 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4세기 후반이나 5세기 전반에 해당되는 유적이다. 유물 가운데 다투창고배를 비롯하여 파배, 호류(壺) 등이 수습됐는데 특히 四足形 파배(把杯)는 기형(器形)이나 제작기법이 특이한 이형토기(異形土器)이다. 무기류로는 철모(鐵矛), 단조철부(鍛造鐵斧), 유자이기(有刺利器) 등도 수습되었다.
삼국시대 돌덧널무덤는 구릉의 정상부를 따라서 집중 분포하였다. 유구는 단곽식(單槨式)과 주부곽식(主部槨式)으로 나누어지는데 주부곽식은 ‘日’자형이거나 ‘T’자형의 형태이다. 수혈식(竪穴式)이며 벽석은 청석과 할석을 이용하여 가로 또는 세로눕혀 쌓기로 축조하고 단벽에 1매의 돌을 세워쌓기 했다. 덮개돌(蓋石)은 별도로 보이지 않았지만 잔흔으로 볼 때 일부 청석을 덮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유물로 추정한 시기는 축조시기에 따라 변화가 민감한 고배(高杯)와 대부장경호(臺附長頸壺), 철물 등으로 판단할 때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중후반까지 긴 시간을 두고 무덤이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중요 유물로는 금제이식(金製耳飾)장신구 1점이 출토된 되었으며, 무기류와 마구류, 농공구류 등이 수습되었다, 특히 무기류는 도자(刀子), 소도(小刀), 대도(大刀), 철모(鐵矛), 철촉(鐵鏃), 단조철부(鍛造鐵斧)와 유자이기(有刺利器) 등이라서 여기에 묻힌 피장자들이 전쟁과 농사에 종사한 자들로 추정되는데 향후 이 일대의 유구들이 모두 조사되면 더 확실한 문화상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 돌덧널무덤은 단곽식(單槨式)으로 생토면을 파고 청석을 굴광(掘壙)면에 맞대어 가로 또는 세로 세워쌓기 했다. 유물은 토기류인 병과 자기류인 청자 대접과 병, 잔 등이 수습됐다.
이 가운데 청자병은 고려시대 돌덧널무덤에서 수습되었는데 반구형을 하며, 병도 아가리가 급하게 꺽이는 등 통일신라시대의 병 모양(器形)을 많이 닮고 있다.
청자잔은 고려시대 청자병과 동반 출토되어서 시기 추정에 도움이 된다. 청동구류는 동곶(銀製) 1점이 수습되었는데 유구의 시기 판단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고려~조선 토광묘는 5기에서 19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토광묘에서 출토된 백자류와 청동기류인 숟가락 등으로 판단할 때 15~16세기의 유물들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경산 자연마당 유적에서 출토된 유구와 유물은 이 지역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무덤지역으로 조성되어 왔으며, 고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유구의 형태를 달리하면서 지속적으로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 지역의 발굴 자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축조된 것을 보여주는 주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특이한 점으로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는 유구와 유물들은 확인이 되었지만, 통일신라시대 유물은 전혀 보이지 않은 점이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 주변 발굴을 통해서 확인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자연마당 조성사업부지 전면에 유구가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정상 일부 지역에만 조사가 이루어져 전체적인 성격을 밝히지 못한 점이다.
향후 이 지역에 또 다른 개발행위를 비롯한 형질변경이 된다면 반드시 매장문화재 조사를 한 후에 사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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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광묘 1호 조사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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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석곽묘 조사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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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곽묘 3호 조사중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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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곽묘 6호 조사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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