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빛문화재연구원-경산신문 MOU 지역연구자료공유 기획연재 (6)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까지만 해도 10세 미만의 아이가 죽으면 시신 그대로를 염(殮)하지 않고 홑이불로 말아 옹기(甕器) 혹은 단지에 넣어 매장했다고 한다. ‘애장’, ‘아장’, ‘독장’ 등으로 불리는 옹관묘는 말 그대로 큰 독이나 항아리 등의 토기에 시신을 넣어 묻은 무덤을 말한다.
이처럼 토기에 시신을 넣어 매장하는 옹관묘는 전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던 방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의 뼈만 추려서 묻거나(세골장), 성인이 되지 못하고 사망한 유아를 빠른 시간 내에 간단히 매장하기 위한 묘제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옹관묘는 신석기시대부터 확인되지만, 초기철기시대가 되어야 본격적으로 조영되기 시작한다. 사천 늑도와 김해 예안리유적의 옹관묘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데, 옹관 내부에서 3세 이하 유아의 뼈가 확인됨에 따라 “옹관묘=유아묘”라는 인식이 고착된 듯 보인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보다 다양한 형태의 옹관묘가 확인된다. 무엇보다 옹관으로 사용했던 토기의 종류가 다양해지는데 이전 시기에 사용했던 좁고 긴 형태의 토기(장란옹)와 삼국시대에 등장하는 회청색을 띠는 큰 토기(대호)를 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특히 영남지역에서는 대호를 사용한 옹관 주변에 돌을 둘러 석곽 형태로 만든 석곽옹관묘도 확인되고 있어 주목된다.
삼국시대의 옹관묘 역시 유아의 무덤으로 인식하지만, 나주 영산강 유역의 고분 내에서는 길이가 3m를 넘는 옹관을 매장하는 사례도 있어 옹관묘를 어린아이의 전용 무덤으로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영남지역에서 확인되는 옹관묘는 길이가 60~110㎝ 정도이기 때문에 시신을 안치하는 공간이 매우 작은 편이다. 그리고 옹관 내부에서는 손잡이가 달린 잔(파배)이나 다리 달린 긴 목 항아리(대부장경호), 짧은 목 항아리(단경호), 굽다리접시(고배)와 같은 토기들이 부장되는데, 비교적 소형으로 제작되어 부장된다는 특징이 있다.
한편 일부에서는 방울, 구슬, 차(수레)모양토기 같이 장난감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부장되는가 하면, 유아의 인골이 확인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옹관묘는 어린아이를 매장하는 묘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남지역의 옹관묘 역시 워낙 크기와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옹관묘를 유아의 무덤으로 단정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으니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옹관묘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를 참고해보면 옹관묘는 규모가 큰 고분의 주변에 부속시설처럼 조성된 경우가 많아 주 고분에 매장된 주인공과 관련된 가족 혹은 유아 순장자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경산 임당 유적에서도 초기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다양한 형태의 옹관묘가 확인되었다. 그중에서도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옹관묘는 임당 7C호를 들 수 있다. 옹관은 길이 90~100㎝ 정도의 대호 2점을 옆으로 눕히고 입구 부분을 맞대어 설치했는데, 동쪽에 있는 옹관이 시신이 안치되는 주옹, 서쪽에 있는 옹관이 부장품을 넣었던 부옹으로 이해된다.
주옹은 입구 부분까지 자갈을 편평하게 깔아 시신을 안치하기 위한 시설인 시상을 만들었고, 그 위에는 뚜껑이 있는 접시(개배)와 굽다리접시, 긴 목 항아리를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서 조개껍질이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토기 내부나 주변에 음식물을 함께 부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옹의 가운데 부분에서는 유아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 흔적과 금제 귀걸이, 곡옥이 달린 목걸이, 손칼(도자)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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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양한 옹관묘 유적 사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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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품을 넣어 두었던 공간인 부옹에서는 주옹과 같이 돌을 채워 넣는 등의 별다른 시설을 설치하지 않았다. 다만 내부에서 다양한 토기(다리달린 항아리, 긴 목 항아리, 굽다리접시, 병모양항아리, 주구(注口)달린 항아리)와 조개껍질, 생선뼈 등이 확인되어 아마도 음식물을 담은 토기를 부장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음식물은 최근 영남대박물관에서 진행한 동물유체 분석결과 참돔 2마리와 복어 3마리, 백합조개로 밝혀졌다.
이러한 임당 7C호 옹관묘는 고대 압독국 사회에서 어린아이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압독국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무덤 중에서도 어린아이를 매장한 것으로 이해되는 옹관묘는 비록 옹관이라고 하는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큰 대호를 사용하면서 내부에는 시상을 설치하고 다양한 토기를 부장했다는 점은 비교적 엄중한 장송의례를 진행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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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산 임당유적 7C호 옹관묘와 출토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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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금제귀걸이나 곡옥이 달린 목걸이 등을 착용한 유아가 확인된다는 점을 통해 이 임당 7C호 옹관묘의 주인공은 당시 사회 내에서도 일정 계층 이상의 지위에 해당하는 유아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부유한 유아’의 무덤은 유아를 매장한 부모의 지위와 명예, 그리고 자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 의례적 측면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지만, 높은 신분을 지닌 부모의 지위가 자식에게까지 그들의 지위를 세습하는 귀속적인 지위를 보여주는 한 사례로 파악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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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4단계 BK21 교육연구팀 연구교수. |
<필자 프로필>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문화인류학 학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고고학 전공 석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고고학 전공 박사
박사논문 : 신라 적석목곽묘 상장의례 연구
주요논문 : 신라 옹관묘의 축조와 의례적 성격(2020, 야외고고학 39, 한국문화유산협회)
적석목곽묘 두상부 부장군 부장 용기와 그 의미(2020, 한국고고학보 116, 한국고고학회)
신라 적석목곽묘 묘사(墓祀)의 성격과 의미(2021, 한국상고사학보 112, 한국상고사학회)
신라 적석목곽묘 덩이쇠(鐵梃)의 부장 정형과 그 의미(2021, 민족문화논총 78,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지역 고고유산 체험 교육의 활성화 방안과 전략(2021, 문화재 54, 국립문화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