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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경산사람

54년생, 송백리 출신 김경문 씨

최승호 기자 입력 2022.01.20 13:34 수정 2022.01.20 14:15

 
오래 묵혀 놓았던 사람을 이 주일의 경산사람으로 내놓는다. 지난해 어느 날 아침, 최영조 시장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흔치 않던 일이라 사무실에 출근해 차도 마시지 않고 바로 시장실로 갔다. 의자에 앉자마자 시장님이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지난주에 누가 보내와서 읽다가 갑자기 최 대표가 생각났다며 경산신문에서 연재하는 <이 주일의 경산사람>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푸른 표지의 책을 들고 사무실로 왔다. ‘기록은 위대하다’로 시작되는 서문을 읽고는 책을 덮었다. 한 번도 뵙지 못한 고향 선배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서울생활이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김경문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송백리>를 해가 지나고 이제야 경산신문 독자들에게 내놓는다. 평범한 인간 김경문의 위대한 기록이다.

김경문 씨는 1954년 12월 남천면 송백리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만 68세가 된다. 남천초등학교와 경산중학교, 대구상고를 거쳐 산업은행에 취업했다. 그리고 배움을 계속해 건국대학교 무역학과와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김 씨의 글쓰기는 1968년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됐다. 68년 4월 2일 첫 일기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수업을 마친 후 통학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6학년 동생들이 중학생이 된 자신을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이어 4월 5일 식목일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 담장 밑에 고욤나무 한 그루를 심고 내년에 감나무 접붙이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4월 9일에는 반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10원씩 걷어 주기로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너무 적다며 20원씩 내자고 하셨다고 적고 있다. 20일에는 경산군과 청도군 중고등학생 친선체육대회가 경산중학교에서 열려 등교를 하지 않고 소풀을 뜯었다고 적고 있다. 24일 일기에는 조총련이 도쿄에 조선대학교를 설립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궐기대회가 열렸다고 적고 있다. 김 씨도 반대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었다. 25일은 경산장날이라 승객이 많아 다음 통근열차를 이용하라고 역장이 말렸다고 적고 있다.

29일에는 기차를 타다가 떨어져서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 일로 지서로 가서 조사를 받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5월 15일 스승의 날에는 스승과 학생 친선배구대회가 열렸고, 6월 2일 향토예비군들의 간첩잡기 훈련이 마을 뒷산에서 있어서 구경 갔다고 적고 있다. 6월 18일 일기는 사흘 동안 보리타작을 돕기 위한 가정실습이 시작된다고 적었다.
 
1969년 1월 19일에는 대구에 있는 작은 형님 집에 놀러 간 일을 적고 있다. 작은 형님은 옷 짜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월급은 형님과 자신의 등록금으로 쓰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적고 있다. 8월 4일에는 시냇물이 불어서 학교에 가지 못했는데 강물에 따내려오는 닭을 건져왔다고 적었다.

8월 11일에는 영화관에서 <전설 따라 삼천리>와 <꼬마신랑>을 보았다고 적었고, 8월 15일에는 군청에서 열리는 24회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으나 통근열차를 놓쳐 뒤늦게 참가했다고 적고 있다. 다음날 김 씨는 자신이 이렇게 일기를 쓰는 이유가 참다운 친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그래서 일기장 제목도 <모든 일은 나로부터>로 정했다.
 
8월 28일에는 기찻길에서 쇳조각을 납작하게 만들어 작은 칼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30일에는 마을 사람이 농약을 먹고 지프차에 실려 가는 것을 보고 ‘나는 커서 술도 배우지 말고 아내도 고생시키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했다고 적고 있다. 팔월 마지막 날은 아버지가 시장에 가서 판 황소 한 마리 가격이 9만 8000원이라고 적었다. 9월 5일에는 단체로 <아폴로 11호> 영화를 감상했고, 협동조합 가입자에게 빵을 두 개씩 나누어주었다고 적고 있다. 

9월 14일에는 사이나(청산가리)로 보에서 물고기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먹은 일, 9월 15일에는 홍수로 물이 불어나 삼성역에서 6시 44분에 출발하는 통근열차 대신 객실 한 칸을 단 화물차를 타고 간 일을 적고 있다. 9월 17일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경산역을 지나간다고 해서 구경 갔지만 순경과 파수꾼에게 막혀 보지 못했다고 적었다. 나중에 대통령이 밀양 홍수 때문에 다녀갔다고 들었다고 적었다.

9월 27일에는 남천초등학교에 노래자랑대회가 있어서 놀러 갔더니 마치고 영화 <포옹>을 보여주었다고 적었다. 10월 16일에는 고산서원으로 소풍 갔던 일, 17일에는 유신헌법 투표에서 경산군의 투표율이 93.3%, 찬성률은 80%가 넘었다고 적었다. 12월 29일에는 금곡에서 버스를 타고 경산에서 압량 가는 차로 갈아타고 금구동 작은 집에 놀러 갔다고 적었다. 점심을 먹고 청천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서 새로 뚫린 경부고속도로를 처음으로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1970년 1월 1일, 신년조회를 마치고 열차를 탔는데 정기권 패스요금이 월 460원으로 2배가 올랐다고 적었다. 1월 24일 형님들의 졸업식이었는데 1시간 30분이나 진행돼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고 적었다.
 
일기는 두 해를 건너뛰어 대구상고로 진학한 1972년으로 넘어왔다. 9월 21일 추석이라 6교시 수업을 마치자 말자 짐 보자기를 싸서 완행열차를 타고 집으로 간 일을 적고 있다. 10월 3일은 개천절이라 공휴일인데도 도지사 지시로 기념식을 했다고 적었다. 73년 10월 1일 입행시험이 가까워져 산업은행에 지원하기로 했고, 10월 5일 드디어 서울로 출발했다. 서울역을 나와 예약된 상도여관까지 걸어 17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7일 드디어 작문 영어 부기상식 네 과목 입행시험을 보고 나서 시간이 남아 남산을 구경했다고 적었다. 서울에 대한 첫인상은 좋은 것만이 아니었다.

교통질서에 있어서는 대구보다 못한 거 같다고 적었다. 새벽에야 대구로 내려온 김 씨는 그날의 감회를 이렇게 적었다. ‘이제부터 온실생활은 끝나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대평원으로 나가 태양과 비바람과 싸워야 할 출발점인 것이다’

이렇게 남천면의 오지 송백리에서 태어난 김경문 씨가 열차로 통학하며 경산중학교를 마치고 자취방을 옮겨 다니며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은행원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과정이 330페이지짜리 책에 빼곡히 적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가 더해진 일기를 반세기가 지나 발간하게 된 배경을 김 씨는 이렇게 썼다. “청소년 시절의 부끄러운 내용도 많이 있지만 그 시절의 우정과 갈등, 가족사랑에 대한 이야기들과 그리고 취직을 둘러싼 환희와 조절, 극복을 위한 노력 등 이러한 것들이 독자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내면서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의 바탕이 되어주었던 가족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지난해 9월 결혼 40주년을 맞았습니다. 40년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한 아내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스스로 노력해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녀와 사위, 며느리 그리고 항상 웃음꽃을 자아내는 세 손녀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진은 김경문 씨의 대구상고 시절 찍은 사진이다. 옛날의 김경문 씨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 사진을 통해 재회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사진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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