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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연구자료공유 기획연재 (1)] 경산 임당 발굴 배경과 의의

경산신문 기자 입력 2022.01.20 11:56 수정 2022.11.03 15:30


 

(재)한빛문화재연구원-경산신문 MOU
                 지역연구자료공유 기획연재 (1)



↑↑ 경산 임당유적 전경.

영남대학교 앞의 동서로 긴 야트막한 구릉에는 우리나라 고고학 연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경산 임당유적이다.
 
이 유적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형성된 것으로 우리나라에 고대 정치체가 발생하여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특히 대형의 봉토를 가진 고분으로 이루어진 동쪽의 부적리고분군, 중앙의 조영동고분군, 서쪽의 임당동고분군은 유적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고, 임당동고분군의 바로 뒤에는 이들 고분을 조성했던 집단들이 축조한 임당토성이 자리하고 있어 당시 유적을 조영했던 세력집단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유적에 대해서 그동안 약 20여 차례의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이곳에 존재했던 것으로 고대문헌에 기록된 압독국 혹은 압량소국의 실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굴은 모두 학술적인 목적을 위한 계획된 발굴이 아니라 도굴로 인해서, 또는 택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라는 등 어쩔 수 없이 유적의 성격을 밝혀야만 할 구제적 성격의 발굴이라는 점에서 과거 우리의 매장문화재에 대한 미진한 인식을 반영해 준다.
 
여러 차례의 유적 발굴 가운데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는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한 1982년의 임당동고분군 발굴, 1987~1988년의 조영동고분군의 발굴, 영남문화재연구원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한 1995~1997년의 임당동택지개발지구에 대한 전체적인 발굴을 들 수 있다. 또 이러한 대규모 발굴 외에도 도굴된 고분의 정비 목적을 위한 2016~2017년 세종문화재연구원에 의한 부적리 고분의 발굴과 한빛문화재연구원에 의한 임당동 1호분의 발굴도 주목된다.

비록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학자가 이 유적의 존재를 알린 적은 있으나 한동안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82년 임당동고분군의 발굴이었다. 이 발굴은 지금부터 40년 전 이때쯤인 1982년 1월 임당동고분군을 도굴한 도굴범이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여기서 도굴된 은제조익형관식, 은제허리띠, 금제귀걸이 등이 압수되어 언론의 지면에 대서특필되자 문화재관련 당국이 영남대학교박물관에 발굴을 의뢰해 이루어졌다. 

임당동의 2호분과 5~7호분을 대상으로 한 이 발굴에서 금동관과 관식 등 5세기 무렵 지배자를 상징하는 유물이 대거 발굴되고 확실한 순장의 흔적을 알려주는 인골의 출토 등 『삼국사기』 등에 몇 줄 남아있는 압독국 또는 압량소국이라고 부르던 조그만 국가의 존재를 추적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성과에 따라 고분군은 국가사적 제300호로 지정되었다.
 
↑↑ 임당동고분군 발굴 모습.

↑↑ 조영동고분군 발물 모습.


이후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유적의 대부분이 1987년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어 한국토지공사에 의한 개발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지금은 이러한 개발에 앞서서는 문화재의 분포 등에 대한 전문적인 조사가 진행되어 매장문화재에 대한 손실을 막고 있으나 그 때에는 그러한 제도적인 장치가 없어 유적의 중앙부에 있는 조영동고분군의 대형봉토분이 중장비에 의해 파괴되는 등 유적 곳곳이 파헤쳐졌다. 이 파괴 현장이 영남대학교 박물관 연구팀에 의해 목격되었고, 이것이 언론에 알려지자 공사가 중단되고 대형봉토분을 중심으로 한 유적의 일부가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조영동고분군은 이때 발굴되었다. 이 발굴에서는 앞의 임당동고분군의 발굴에서와 같은 금동관, 은제관식, 금제귀걸이 등의 귀중한 유물과 순장의 흔적을 알려주는 인골 등이 많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이런 성과에 힘입어 대형의 봉토분을 중심으로 한 조영동고분군이 국가사적 제331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게 되었다.

이러한 일부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택지개발지구 전체에 대한 문화재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1993년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전면적인 시굴조사가 진행되어 아직 원지형이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는 곳마다에 고대의 삶과 주검의 흔적인 유구가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당국은 유적 전체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난 이후에 택지로 개발한다는 정책적 결정을 하게 되었고 영남문화재연구원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이 발굴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것이 1995~1997년의 발굴이다. 이 발굴에서는 기원전 2세기부터 축조된, 즉 대형봉토분이 만들어지던 시기 이전의 목관묘와 목곽묘부터 7세기대의 석실묘 등을 비롯한 수많은 분묘와 이 무덤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집자리, 그들이 이용한 토성과 수원지 등이 조사되었다. 이 발굴로 인해 압독국의 지배자상 외에도 일반인들의 삶과 그 사회의 모습 등을 더욱 확실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유적에는 보존된 구역을 제외하고는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그 주변에 대한 개발도 진행되면서 점적인 발굴이 지속되었다. 특히 2015년에는 임당동고분군의 주변 도로의 개선 때 그 하부에서 임당동과 조영동의 대형고분에 버금가는 유물을 가진 큰 고분이 진흥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조사되기도 하였다. 

또 개발되지 않고 남아 있던 부적리고분군과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던 임당동고분군의 1호분에 대한 도굴이 그 해에 이루어져 그 후속책으로 각각 세종문화재연구원과 한빛문화재연구원이 발굴하였다. 이 발굴에서도 금동제의 조익형관식과 팔뚝가리개와 가슴가리개 갑옷을 비롯한 귀중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한편 임당동과 조영동으로 나뉘어 사적으로 지정되었던 고분군은 2011년 7월 28일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인접된 두 고분군을 통합하여 사적 제516호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으로 재지정되었고, 이후 부적리고분군 일대까지 포함하여 사적이 확대되어 유적이 보호되고 있다.
 
↑↑ 김용성 한빛문화재연구원.
필자 프로필
영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석·박사를 취득하고, 영남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원, 신라문화유산조사단 조사연구실장, 중원문화재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한빛문화재연구원 조사단장과 계명대학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삼국시대의 고분문화를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신라의 고총과 지역집단』(1998 춘추각), 『신라왕도의 고총과 그 주변』(2009 학연문화사), 『신라 고분고고학의 탐색』(2015 진인진) 등이 있고, 「황남대총 남분의 연대와 피장자 검토」(2003), 「고분으로 본 신라의 장송의례와 그 변혁」(2014) 등 다수의 논문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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