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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 사회 사회일반

경산문화가 산책 '예술마당' ... 건축 탁훈식

편집부 기자 입력 2008.02.25 14:19 수정 2008.02.25 14:19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이 코르네트

‘저기 보이는 나무가 나의 가장 좋은 건축 표본이다’


오늘은 100년쯤 전에 살았던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안토니오 가우디는 1852년 지중해 연안의 스페인 까딸루냐 지방에서 구리세공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가우디의 고향은 지중해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배여있는 시골이였다.
그의 건축에는 그러한 지중해의 아름다움과 함께한 어린시절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는 어린시절 같이 놀 친구가 거의 없었다. 마땅한 장난감도 없는 시골에서 하늘, 햇빛, 바람, 물, 나무, 사람, 벌레, 몬세랏산 등 고향마을 모든 자연이 친구이자 놀이터였다.
레우스 지방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삼촌에게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철을 다루는 것과 석고기술 등을 보고 배우게되었고,  바르셀로나에서 건축설계와 시공에 관한 실무적인 일들을 공부했다.
일평생을 바르셀로나에서 독신으로 연로한 아버지와 조카딸과 함께 살았으며 1926년 「성가족 교회」의 공사현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던중 차에 치여 숨졌는데 빈민병원으로 실려간 남루한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가우디의 인생은 종교와 자연으로 집약된다. 그가 만들어낸 모든 형태는 자연물에서 얻어 온 것이다. 그는 꽃과 나무를 관찰한 뒤 건축적 형태와 완벽하게 결합시켜 가장 새로우면서도 스페인의 자연과 어울리는 예술품을 만들어냈다. 그의 건축물에는 산이 많고 해안에 있는 카탈루냐의 지형적 특징이 잘 표현되고 있다. 어린 시절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페인인들이나 건축학도들에게도 가우디는 글이나 강연을 통하여 자신의 건축 물에 대해 메시지를 전한 바가 없다. 그는 자식이나 후계자를 남기지 않았으며 그 흔한 학파도 구성돼 있지 않다. 오로지 건축물을 통해서만 그와 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가우디가 남긴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은 속죄의 교회라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교회’로 꼽힌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교회’는 청년시절 반교권주의자였던 가우디를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만든 건축물로써 하늘을 향해 치솟은 네 개의 탑과 생동감 넘치는 우아한 조각장식이 특징이다. 이 교회는 착공된 지 이미 115년이 지났지만 완성되려면 앞으로도 200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교회’의 미완성에 대해 가우디는 “슬프게도 내 손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완성시키지 못할 것이다. 내 뒤를 이어서 완성시킬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교회는 장엄한 건축물로 탄생하리라. 타라고나 대성당의 예에서 보았듯이 처음 시작한 사람이 마지막 완성까지 보았다면 그 만큼의 웅장함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대와 함께 유능한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움은 빛을 발한다”라며 아쉬움과 겸손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경산에 살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우리경산이 왜 살기 좋고 아름다워져야 하는지를 묵묵히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영남이공대학 산업디자인과 겸임교수 都宇在(도우재)생태건축연구소 대표/건축사


 


<764호 : 2008년 2월 25일 월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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