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사회·경제
사회
사회일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3월 16일까지 고흐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고흐는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붓질과 생동하는 색감으로 유명한 화가이자 또한 자신의 삶을 권총 자살로 끝맺음한 불행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우리는 표현주의 계열의 작품들을 평가할 때 ‘그림에 영혼과 육체를 쏟아 부었다’라는 표현을 자주 하게 되는데 이러한 표현에 가장 적합한 작품을 들라면 나는 단연코 고흐의 작품을 들 것이다.
고흐는 삶의 첫 걸음부터 다른 사람을 대신하는 뒤틀린 인생을 살다 간 화가이다. 그는 시골 목사인 아버지의 5남매 중 장남이지만 사실상 1년 전 같은 날 태어나자마자 죽은 형이 있었는데 빈센트라는 그의 이름은 사실 형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고흐를 데리고 형의 무덤을 자주 찾았는데 어린 고흐는 그 무덤에 쓰인 자기와 똑같은 이름을 보고 극심한 자기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 후 이어지는 그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림 중개상과 전도사로서의 직업 활동은 물론 여러 여자와의 사랑은 모두 참담한 실패로 끝내게 되며, 마침내는 그가 가장 존경하던 화가인 고갱과 함께 지내며 작업을 하게 되어 행복감을 느끼게 되지만 이들의 동거는 곧 고흐가 지신의 귀를 자르는 끔찍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고흐의 집안에는 원래 간질병이 있기도 하지만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그를 자기 정체성의 혼란, 소외감, 불안 등으로 인한 신경쇠약을 불러 오게 되고, 이것이 점점 정신 분열증으로 발달하게 된다. 마침내 몸과 마음이 피폐할대로 피폐한 그는 권총 자살로 괴롭고 힘든 인생 여정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가 마지막 남긴 메모는 ‘나는 평생 잘하는 것 하나 없더니 죽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너무도 무거운 삶에 짓눌린 그는 그림 속에서 자신의 구원을 찾았지만 그림도 결코 그를 구원해 주지 못했다. 그림은 그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의 광기를 부추긴 면이 없지 않다. 어쨌든 그는 불행한 삶을 살다가 요절하였지만, 그의 영혼과 육체를 갉아 먹은 그림은 한 젊은 천재의 광기를 생생하고 강렬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대구사이버대학교 미술치료학과 전임강사
<761호 : 2008년 1월 28일 월요일자>